윤봉길 의사가 사형당한 날…그의 아내가 감당해야 했던 힘겨운 삶
||2025.12.25
||2025.12.25
1932년 겨울, 상하이 홍커우 공원 의거 이후 윤봉길 의사가 일본 오사카 형무소로 이감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내 배용순 여사에게 그 소식은 희망이 아닌 단절의 신호였다. 살아 있다는 사실조차 멀게 느껴지는 거리와 현실이 그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12월 19일, 사형 집행 소식은 예고 없이 들이닥쳤다. 여사는 울음을 터뜨리지 않았다. 나라를 위해 떠난 선택을 원망하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침묵으로 슬픔을 삼켰다.
배용순 여사는 열여섯이라는 이른 나이에 혼인했다. 평범한 부부의 삶은 오래가지 않았다. 남편은 조국을 향해 떠났고, 여사는 기다리는 사람이 됐다.
스물여섯, 너무 이른 나이에 사별이 찾아왔다. 이후 여사의 삶은 홀로 버티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재혼도, 새로운 삶도 선택하지 않았다.
가장 깊은 상처는 둘째 아들 담이의 죽음이었다. 아홉 살 무렵 복막염에 걸렸지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아이를 안고 여사는 밤낮없이 울었다.
남편을 원망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리움은 원망이 되어 터져 나왔다. 아이를 잃은 슬픔과 남편을 잃은 상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여사의 삶은 그날 이후 멈춰버린 듯했다.
세월이 흐르며 집 앞에는 참배객과 학생들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영웅을 기렸지만 여사는 그 시선을 피해 숨어버리고 싶었다. 그에게 윤봉길은 위인이 아니라 남편이었기 때문이다.
여사는 늘 마음속으로 같은 말을 되뇌었다. 나라를 구했으니 장하다는 말보다 살아 돌아와 밥 한 끼 함께 먹자는 말이었다. 그렇게 배용순 여사의 기다림은 평생 끝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