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재의 빈자리, 모두가 흐느꼈다’…“나는 멍청이 배우였다” 후배들의 참회
||2026.01.01
||2026.01.01
[EPN엔피나우 고나리 기자] 2025년 12월 31일 밤, 여의도 KBS홀에서는 평소처럼 화려한 무대와 몰려든 배우들로 식장이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대상 시상이 다가오자 분위기는 일순간 바뀌었다. 전년도 대상 수상자인 고(故) 이순재 배우가 무대 위에 오르지 못했고, 그 자리는 최수종이 대신했다.
최수종은 “선배님께서 영면하신 지 벌써 한 달 하고도 6일이 지났습니다”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고인의 부재를 전했다. 1년 전 “백 살까지 연기하겠다”고 당당히 소리쳤던 이순재의 다짐은 이루어지지 못했으나, 현장에는 오히려 그의 정신이 더욱 또렷하게 다가왔다.
방송 3사 연기대상은 올해 축제의 겉모습과 달리, 깊은 반성의 시간을 맞았다. 그 배경에는 MBC 연기대상에서 드러난 이순재의 말년이 있었다.
소속사 대표가 알린 사연에 따르면, 이순재는 유작이 된 드라마 ‘개소리’ 촬영 중 한쪽 눈을 잃었고 남은 시력과 청력까지 약해진 상태였다. 대본이 보이지 않는 그는 직접 읽는 대신 누군가 읽어주는 소리를 들으며 이를 외워야 했고, 흐릿한 시야에 의존해 어렵게 연기했다.
보통 배우였다면 촬영 중단과 치료를 먼저 생각했겠지만, 그는 이러한 사실을 마지막까지 동료들에게 숨기고 제작진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오로지 “다른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한 가지 이유에서였다.
오늘날 촬영장에서 권리와 편의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보편적인 가운데, 그의 행동은 숭고한 희생으로 평가받는다. 연기가 자아실현이나 생계 수단을 넘어서, 반드시 책임지고 완수해야 할 ‘성직’으로 다가온 것이다. 육체의 시야를 잃었지만 예술혼은 오히려 빛났다.
이순재의 이런 헌신은 후배들에게 스스로를 비춰볼 거울이 됐다.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거머쥔 안재욱은 수상 소감에서 “나는 멍청이 배우였다”라는 고백과 함께, 과거 상을 받지 못하면 불평하던 모습을 돌아보며 눈물을 흘렸다. 반면 이순재의 대상 수상 당시에는 “평생 신세만 많이 졌다”며 겸손을 보였다는 점을 언급하며 자책했다.
그날 무대에서 터져나온 눈물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선배의 빈자리에 비춰진 자신의 부족함을 반성하는 안타까움의 표현이었다. 베테랑까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 이순재의 겸손과 엄격함이 큰 울림을 남겼다.
SBS 연기대상에서 신동엽은 “이제 선생님은 저 높은 곳에서 별이 돼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육신은 떠났지만 남아있는 ‘빈 의자’의 무게는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이순재라는 존재 없이 자리만 남은 현장을 채울 해답은 스타성이나 시청률이 아니라, 대본조차 눈으로 볼 수 없던 절실함과 최고 위치에서도 “신세를 졌다”는 진심어린 겸양에 있다.
행사가 마무리되고 각자의 촬영장으로 복귀하지만, 그날 밤의 숙연함은 오래 남을 전망이다. 이순재가 몸소 실천했던 ‘배우의 품격’은 이제 후배들이 이어받아야 할 숙제로 남았다. 새로운 ‘진짜 어른’의 등장을 대중은 기다리고 있다.
사진=KBS, MBC, SB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