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前 대통령의 숨겨진 내연녀이자 혼외자라고 주장한 두 여성
||2026.01.02
||2026.01.02
과거 대한민국 정치사의 거물이었던 故 김영삼(YS) 전 대통령. 그의 화려한 정치적 이력 뒤에는 수십 년간 그를 따라다닌 ‘숨겨진 딸’에 대한 의혹이 있었다. 1990년대 대선 정국을 흔들었던 ‘가네코 가오리’ 사건은 단순한 루머를 넘어 법정 공방으로까지 번지며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사건의 발단은 196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의 한 유명 요정에서 근무하던 이경선 씨는 촉망받는 젊은 정치인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만났다고 주장한다. 5.16 군사정변 직후 정치적 활동이 제약되었던 시절, 두 사람은 연인 관계로 발전했고 1962년 딸 ‘현이’를 낳았다는 것이 이 씨의 설명이다.
이 씨의 증언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딸을 직접 보러 오기도 했으며 “고집이 나를 닮아 유난하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유부남이었던 그와의 관계에 부담을 느낀 이 씨는 결국 1964년 일본으로 건너가며 이별을 택했다.
그녀의 딸 현이는 일본에서 ‘가오리’라는 이름으로 자라났다. 호적 문제로 대만인의 양녀로 입적되기도 하는 등 국적과 뿌리를 잃은 채 살아온 그녀는 1970년대 중반, 어머니를 통해 김 전 대통령에게 경제적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당시 YS는 “미국에서 공부하며 훌륭한 사람이 되라”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가오리의 존재는 1987년과 1992년 대선 때마다 정치적 ‘흑색선전’의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당시 YS 측은 이를 “정보기관의 공작”이라며 강력히 부인했으나, 의혹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2000년, 이경선 씨는 마침내 김 전 대통령을 상대로 친자확인 소송과 함께 30억 원의 위자료를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이 씨는 “과거 YS 측으로부터 총 23억 원을 받았으나 생활비와 아들의 사업 자금 등으로 모두 소진했다”고 밝혀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가오리 씨가 소송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반전이 일어났다. 어머니 이 씨가 받은 거액의 돈을 딸인 자신을 위해 쓰지 않은 것에 대한 서운함으로 모녀 사이가 틀어진 것이다. 결국 세간의 비난 섞인 여론과 모녀간의 갈등 끝에 이 씨가 소를 취하하면서, 가오리 사건은 법적인 결론 없이 미궁 속으로 남게 되었다.
비록 가오리 사건은 일단락되었으나, 김 전 대통령은 서거 전인 2010년 또 다른 친자확인 소송에 휘말렸다. 당시 52세였던 남성 김 모 씨가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김 씨를 친생자로 인정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김 전 대통령이 유전자 검사 명령에 응하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대한민국 정치사의 한 획을 그은 김영삼 전 대통령. 그가 떠난 지금도 ‘가오리’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그의 혼외자 논란은 한국 정치사의 어두운 단면이자 ‘요정 정치’ 시대가 남긴 씁쓸한 유산으로 기록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