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특별한 사람 아니"라던 ‘국민배우’ 안성기, 5일 끝내 별세
||2026.01.05
||2026.01.05
‘국민배우’ 안성기가 5일 끝내 세상과 이별했다. 74번째 맞은 생일(1월1일)이 5일 지난 뒤였다.
안성기가 이날 시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오던 서울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에서 별세했다. 안성기는 지난해 12월30일 오후 4시쯤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심폐소생술(CPR)을 받으며 순천향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위중한 상태에 빠져 중환자실로 옮겼다. 이후 6일 만에 타계했다. 2020년 10월 초 갑자기 쓰러진 뒤 병원에서 혈액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아온 그는 끝내 깨어나지 못한 채 타계했다. 영화계는 유족과 협의해 고인의 빈소가 마련되는 대로 영화인장을 추진할 계획이다.
1952년 태어나 1960년대까지 아역배우로 활약한 그는 1980년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날’을 시작으로 2020년대까지 한국영화의 화제작과 문제작으로 불리는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모두 180여편의 작품에서 연기를 펼친 그를 관객은 명실상부한 한국영화 대표배우로 인정해왔다. 단 한번 구설에도 오르지 않을 만큼 성실하고 철저한 자기관리와 일상, 정감 가득한 특유의 미소로도 관객에게 친근했다. 그래서 ‘국민배우’라는 별칭으로 불린 유일한 예인이자 장인으로 찬사받고 있다.
고인은 다섯 살이었던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했다. 이후 ‘10대의 반항’(1959), ‘하녀’(1960), ‘돼지꿈’(1961), ‘얄개전’(1965) 등에 아역배우로 출연했다. 김기영 감독의 ‘10대의 반항’으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영화제 소년특별연기상을 수상하며 일찌감치 재능을 과시했다.
1969년 김대희 감독의 ‘애수의 언덕’까지 60여편의 영화에 아역으로 출연했던 그는 스크린을 떠나 학업에 전념했다. 이후 한국외대 베트남어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육군 중위(학군단 12기)로 전역해 무역회사 직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다 20대 중반 1977년 김기 감독의 ‘병사의 아가씨들’로 스크린에 복귀했다. 그리고 1980년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날’의 주연으로 나서 대종상 신인상을 거머쥐며 한국영화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임권택 감독의 1982년작 ‘만다라’ 및 1983년작 ‘안개마을’ 등으로 대종상 남우주연상 등을 받은 안성기는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첫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1982년 ‘철인들’의 연출자 배창호 감독과 이후 ‘고래사냥’ ‘적도의 꽃’ ‘깊고 푸른 밤’ ‘기쁜 우리 젊은 날’ 등으로 호흡을 맞추며 한국영화의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기도 했다.
1981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비롯해 이장호 감독의 ‘꼬방동네 사람들’(1982), 장선우 감독의 ‘성공시대’(1988), 박광수 감독의 ‘칠수와 만수’(1988), 정지영 감독의 ‘하얀전쟁’(1992), 김지훈 감독의 ‘화려한 휴가’(2007) 등 사회성 짙은 영화를 통해 배우가 드러내야 할 현실의 책무를 이행하는 데에도 주저하지 않았다.
1994년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로 흥행을 맛본 그는 2003년 ‘실미도’로 한국영화 첫 1000만 관객 돌파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북파공작원들의 비극을 그린 영화에서 그는 강렬한 카리스마를 드러내며 1000만 관객의 가슴을 울렸다.
‘투캅스’의 또 다른 주역인 후배 박중훈과도 인연을 이어갔다. 1988년 박광수 감독의 ‘칠수와 만수’를 시작으로 1999년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것 없다’를 거쳐 ‘투캅스’, 그리고 2006년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스타’까지 모두 4편에서 호흡을 맞췄다. 두 사람은 ‘투캅스’와 ‘라디오스타’로 대종상과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함께 받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최근 에세이집 ‘후회하지마’를 펴낸 박중훈은 “말은 덤덤하게 하지만 굉장히 슬프다”면서 고인이 “존경하는 스승님, 영화인, 선배님, 스승님 같은 분이다”며 추억했다.
이 같은 화려한 경력 위에서 안성기는 연기 무대를 굳건히 지키며 ‘국민배우’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관객과 함께했다.
1998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으로 위촉된 고인은 영화제 발전을 위해 자리를 떠나지 못했고, 1991년 이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로서 아이들과 어려운 이웃을 위한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데에도 최선을 다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드러내고 과시하는 데에는 한없이 인색했다. 2023년 맥스무비와 인터뷰에서 그는 “배우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면서 “공기처럼 있는 듯 없는 듯 평범하게 여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생전 한국영상자료원 KMDB에 남긴 ‘하고 싶은 말’에 그는 단 한 줄만 남겨놓았다.
‘57년부터 중간에 약 10년간 학업과 군복무로 공백기가 있었지만 현재까지 영화에만 전념하고 있다.”
그리고 2020년 10월 갑자기 쓰러지기 직전까지 촬영했던 김한민 감독의 ‘한산 리덕스’가 관객에게 선사한 마지막 작품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