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모총장까지 ”모든 군 계급을 최단기간에 진급한” 전설의 군인
||2026.01.06
||2026.01.06
이진삼 전 육군참모총장은 한국 군사사상 최단 기간에 소위부터 대장까지 모든 계급을 진급한 전설적 군인으로, 육사 15기 졸업 후 31년 만인 1990년에 참모총장에 오른 업적을 세웠다. 북파 작전에서 북한군 33명을 사살하고 제4땅굴 발견 등 실전 공로로 하나회 핵심 인사에서 노태우 라인 리더로 부상, 군 내 ‘레전드’로 불린다. 그의 경력은 야전 지휘와 정보 작전의 정수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군사 역사다.
1937년 충남 부여 출신 이진삼은 부여고 졸업 후 1955년 육군사관학교 15기에 159등으로 입학, 1959년 소위로 임관했다. 입학 성적은 중간이었으나 보병과 수료 시 2등으로 급상승, 제25사단 GP장·제6군단 하사관학교장으로 첫 보직을 시작했다. 1960년대 초 72연대 3대대 중대장 시절 윤필용 연대장 밑에서 근무하며 하나회에 가입, 베트남전 참전으로 정글전 경험 쌓았다.
1967년 방첩부대 대위로 북파 작전 ‘필승공작’ 주도, 남파 무장공비 4명을 대동해 개풍군 침투해 3차례 교전으로 북한군 33명 사살했다. 지뢰 매설 중 기습으로 사살한 초기 전과는 국내 첩보사 성공 사례로 기록, 김신조 사건 직전 북한 도발에 대한 응징보복이었다. 이 공로로 서산 무장간첩 섬멸 작전에도 참가, 수류탄으로 공비 2명 폭살하며 대간첩 전문가로 부상했다.
1972년 중령으로 8사단 21연대 3대대장, 노태우 연대장 보좌하며 인연 맺음. 윤필용 보안사령부 인사과장 시절 김재규 상관 모시며 정치적 안목 키웠고, 1977년 제20기계화보병사단 61연대장·육군 사격지도단장 역임. 1980년 준장 최초 진급, 9공수특전여단장으로 특공무술 고안에 기여했다. 전두환 정권서 대통령경호실장 제의 고사, 노태우 정부 출범 후 1군사령관으로 제4땅굴 발견 공로 세웠다.
1988년 1군사령관 재임 중 제4땅굴 발견, 시추공 작업 중 수맥 발견해 가칠봉 OP 수영장까지 건설하며 대북 도발 수단으로 활용했다. “땅굴 찾기에 미쳐 일부러 한직 선택” 회고록 증언처럼, 3군단장 시절부터 땅굴 수색에 사비 털어 유리 겔라 섭외까지 시도했다. 이 업적으로 육참총장 후보 강력 추천받았다.
1988년 육참총장 이종구와 갈등 빚으며 국방개혁 논쟁 주도, 1990년 동기 고명승 제치고 참모총장 취임. 육사 15기 최초 대장, 소위 임관 31년 만 업적. 노태우 대통령의 계산된 선택으로 전두환 계파 견제 역할도 했다. 예편 후 체육청소년부 장관 지내며 KBO 개혁 주도했다.
1993년 정보사령관 시절 정치테러로 집행유예, 1996년 신한국당 부여 출마 낙선 후 2008년 자유선진당 의원 당선. 천안함 청문회 발언 등 설화로 논란 샀으나, 지역 사업과 군가산점 부활 추진 등 성과 남겼다. 2021년 ‘이제 만나러 갑니다’ 출연으로 땅굴 비화 증언, 2025년 근황 공개하며 여전한 군사 전문가 면모 과시했다. 이진삼은 실전·리더십으로 한국군의 상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