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영인, 안타까운 비보… ‘추모 물결’
||2026.01.06
||2026.01.06
60여 년 동안 한국 액션 영화와 드라마의 최전선에서 몸을 던져 온 원로 배우 故(고) 김영인이 세상을 떠났다. 유족에 따르면, 고 김영인은 지난 4일 오전 6시 55분 영면했다. 향년 82세.
고 김영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온라인에서도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누리꾼들은 “진짜 몸으로 한국 액션 영화를 만든 분”, “요즘 CG 액션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진짜 배우였다”, “이런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한국 영화가 있다”, “어릴 때 보던 영화 속 액션 장면들이 떠오른다”, “묵묵히 현장을 지킨 진짜 장인”이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1943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난 고 김영인은 경기상고와 한양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학창 시절 하키, 럭비, 권투 등 다양한 종목을 두루 섭렵하며 뛰어난 신체 능력을 길렀다.
이후 대학 재학 중 무술에 깊이 빠지면서 자연스럽게 충무로에 발을 들였다. 고 김영인은 지난 1961년 김기덕 감독의 영화 ‘5인의 해병’에서 주연 배우들의 위험한 액션 장면을 대신 소화하며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을 계기로 그는 한국 영화사 초기 스턴트 연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영화사 연구자 공영민 씨는 지난 2019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고 김영인에 대한 공로 글을 남긴 바 있다. 공영민 씨는 “구술자(고인)가 한국 영화 역사상 ‘거의 최초’의 스턴트맨으로 활약한 ‘5인의 해병’에서 주인공 5인의 액션 연기는 지금 보면 단순한 움직임에 불과하지만, 그 시기 전쟁 액션영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기본적인 액션의 상황들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고인을 치켜세웠다. 이와 함께 류승완 감독은 저서 ‘류승완의 본색’에서 “‘오사까 대부'(1986)에서 이대근 아저씨와 마지막에 시공간을 초월하며 대결을 벌이던 김영인 아저씨의 모습은 정말 근사했다”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고 김영인의 공식 영화 데뷔작은 지난 1966년 김기덕 감독의 ‘불타는 청춘’이다. 이후 그는 ‘어명’, ‘실록 김두한’, ‘동백꽃 신사’ 등 수많은 액션 영화에서 굵직한 존재감을 남기며 액션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 ‘아라한 장풍대작전’, ‘주먹이 운다’,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등에 출연하며 세대를 넘나드는 활약을 이어갔다.
그가 출연한 액션 영화는 약 400~500편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200편 이상에서는 청룽, 이대근, 김희라 등 당대 액션 스타들의 액션 안무를 직접 지도했다. 한 시대를 온몸으로 관통한 고 김영인의 별세 소식에 영화계 안팎에서는 깊은 애도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위험한 장면 앞에서도 한 발 먼저 나섰던 그의 투혼은 한국 액션 영화의 역사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