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김정은 돈 관리하던 집안 딸이어서 너무 쉽게 탈북한 이 여성
||2026.01.08
||2026.01.08
북한 체제의 내부를 꿰뚫는 증언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탈북 유튜버 한송이가 직접 밝힌 북한 상류층의 삶과 탈북 과정, 그리고 한국 정착기는 우리가 알고 있던 북한의 모습과 다른 균열을 드러낸다. 이야기는 특권에서 시작해 자유로 이어진다.
한송이는 북한 양강도 혜산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김정은의 당 자금을 관리하던 고위직이었다. 돈만 있으면 학교에 가지 않아도 졸업장이 나오는 삶이었다.
배급과 결핍이 일상인 북한에서 그는 예외였다. 필요한 물자는 언제든 구할 수 있었다. 체제의 보호를 받는 상류층의 세계였다.
그러나 균열은 문화에서 시작됐다. 국경 지역 특성상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한국 드라마를 접했다. 특히 ‘피아노 치는 대통령’은 강한 충격이었다.
대통령도 연애를 하고 선택을 받는 존재라는 설정은 낯설었다. 북한에서 지도자는 신격화된 대상이다. 그는 그때 처음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에 호기심을 품었다.
학교에서 배운 남한은 굶주리는 나라였다. 하지만 뉴스 화면 속 한국인은 소고기 반대 시위를 하고 있었다. 못 먹는 사람들이 고기를 거부한다는 설명은 성립되지 않았다.
그 순간 교육이 거짓일 수 있다는 의심이 생겼다. 체제의 논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탈북의 씨앗은 그렇게 심어졌다.
탈북 과정은 극적이면서도 허무했다. 아버지와 친분이 있던 국경 경비대 간부 덕분에 “중국에 물건 팔러 간다”는 말 한마디로 국경 문이 열렸다. 그는 친구와 배를 타고 북한을 나왔다.
중국에서 선교사를 만난 뒤 20일 만에 한국에 도착했다. 위험을 감수한 잠행이 아니라 빠른 이동이었다. 다른 탈북민들 사이에서 ‘로켓 배송’이라는 말이 나왔다.
한국 정착 초기는 또 다른 충격의 연속이었다. 국정원 건강검진에서 피를 뽑자 그는 공포에 떨었다. 북한에서 퍼지던 “국정원이 사람 피를 판다”는 소문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항의 광고판도 혼란을 줬다. 김일성·김정일 사진이 있어야 할 자리에 아이돌과 배우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는 저 사람들이 곧 총살당할 것이라 생각했다.
가장 큰 충격은 정치였다. 공원에서 어르신들이 대통령을 욕하는 모습을 보고 그는 곧 잡혀갈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다음 날도 그들은 그대로 있었다.
그제야 자유의 의미를 체감했다. 말해도 사라지지 않는 사회였다. 체제의 공포가 없는 일상이었다.
한국에 온 지 10년. 그는 방송과 강연으로 돈을 모아 청약에 당첨됐다. 대출이 있었지만 북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북한에서는 노력의 한계가 명확했다. 한국에서는 노력의 결과가 돌아왔다. 그는 이제 사회적 약자를 돕는 삶을 꿈꾼다. 특권에서 출발해 자유에 도착한 그의 이야기는 체제의 민낯을 드러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