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ABBA)를 이긴 원조 한류 스타에서 풍기문란으로 활동정지당한 가수
||2026.01.09
||2026.01.09
오늘날 K-팝이 세계를 휩쓸기 훨씬 이전, 이미 목소리 하나로 국제 무대를 평정했던 전설적인 가수가 있다. 바로 ‘안개’, ‘꽃밭에서’의 주인공 정훈희다. 최근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의 주제곡으로 다시금 조명받은 그녀의 음악 인생은 그야말로 한 편의 영화 같은 굴곡과 영광으로 가득 차 있다.
1951년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정훈이는 16세의 어린 나이에 우연히 거물 작곡가 이봉조의 눈에 띄며 운명적으로 데뷔했다. 당시 이봉조는 영화 ‘안개’의 주제가에 맞는 목소리를 찾던 중이었고, 정훈이의 음색을 듣자마자 레코드판을 건넸다. 단 두 번의 연습과 녹음 끝에 탄생한 ‘안개’는 4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그녀에게 신인 가수상의 영예를 안겨주었다.
정훈이는 국제 가요제에서 유독 강한 면모를 보였다. 특히 1972년 도쿄 국제 가요제에서의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정훈이는 ‘좋아서 만났지’로 우수 가창상을 받았는데, 놀랍게도 그다음 순서로 출전했던 스웨덴의 전설적인 그룹 ABBA(아바)는 입상에 실패했다. 비록 아바는 2년 뒤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지만, 적어도 그날만큼은 정훈이가 아바를 압도하며 한국 가수의 위상을 드높였다.
최정상의 인기를 누리던 그녀에게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1975년, 비뚤어진 팬심을 가진 스토커에게 피습당해 얼굴에 큰 부상을 입는 끔찍한 사건을 겪었다. 또한 같은 해 대마초 파동에 억울하게 연루되어 무려 5년간 방송 금지를 당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이후 현재 남편인 김태화와 스캔들이 나면서 풍기문란죄까지 추가되어서 2년간 활동을 더 못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예술혼은 꺾이지 않았다. 활동 금지 기간 중에도 칠레 국제 가요제에 출전해 ‘꽃밭에서’로 최우수 가수상과 최고가수상을 휩쓸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 곡은 훗날 1994년 후배 가수 조관우가 리메이크하며 젊은 층에게도 큰 사랑을 받는 명곡으로 남게 되었다.
정훈희는 단순히 노래만 잘하는 가수가 아니었다. 그녀는 최백호, 남진 등과 함께 가수협회 창립에 앞장섰으며, 당시 ‘노예 계약’이라 불리던 연습생들의 13년 계약 관행을 7년으로 단축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오늘날 체계적인 K-팝 시스템의 권익 보호 기틀을 마련한 셈이다.
굴곡진 현대사의 파고 속에서도 오직 목소리 하나로 시대를 위로했던 정훈희. 그녀의 노래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영화와 리메이크를 통해 우리 곁에서 여전히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