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남자와 여자의 생식기를 같이 지닌 사람이 태어나자 벌어진 일
||2026.01.09
||2026.01.09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기이한 사건 중 하나인 ‘임성구지’ 사례가 현대에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성리학적 질서가 엄격했던 조선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특징을 모두 가진 이들의 존재는 국가적 논란의 중심이었다.
1548년(명종 3년), 함경도 감사는 조정에 급박한 보고를 올렸다. 길주에 사는 ‘임성구지’라는 인물이 남녀의 생식기를 모두 가지고 태어나, 처음에는 여성과 결혼했으나 이후 다시 남성과도 혼인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조선에서는 이처럼 남녀 한 몸인 사람을 ‘어지자지’라 불렀다. 유교적 가치관이 지배하던 사회에서 이러한 존재는 ‘천지의 기운이 어긋난 요물’로 간주되어 조정의 거센 찬반양론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조선의 근간이었던 법전 ‘경국대전’에는 선천적으로 남녀 생식기를 모두 가진 경우에 대한 처벌 규정이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이에 명종은 신하들에게 대책을 논의하라 명했고, 조정은 과거 세조 때의 선례를 검토했다.
당시 ‘사방지’라는 인물이 여성의 복장을 하고 사대부 가문의 과부 등과 사적인 관계를 맺다 적발되어 유배형에 처해진 기록이 있었다. 영의정 홍언필은 이 전례를 근거로 임성구지를 유배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길주 현지에서는 임성구지가 무당 노릇을 하며 남자 옷과 여자 옷을 번갈아 입고 풍속을 어지럽힌다며, 그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상소가 빗발쳤다.
극심한 처벌 요구 속에서도 국왕 명종은 인본주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명종은 “비록 괴이한 존재이기는 하나, 사람의 목숨은 무엇보다 소중하다”며 사형 대신 일반 백성들과 섞여 살지 못하도록 외딴곳에 격리 유배하는 것으로 사건을 일단락 지었다.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신체적 특징이 처벌의 대상이 되었던 임성구지의 비극은 단순한 신체의 기형이 아니라, ‘다름’을 수용할 공간이 없었던 시대의 경직성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