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경호를 위해 ”투입된 특전사 47명이 전사한” 충격적인 사건
||2026.01.14
||2026.01.14
1982년 2월 5일 제주도 한라산에 추락한 C-123 수송기 봉황새 작전은 전두환 대통령 경호 임무 수행 중 707특수임무대대 대원 47명과 공군 조종사 6명을 포함한 탑승자 53명 전원이 사망한 비극이다. 악천후 속 경호실장 장세동의 무리한 강행으로 발생한 이 사고는 ‘대간첩작전 훈련’으로 은폐됐으나 7년 후 서재철 기자의 폭로로 진실이 드러났다. 최정예 특전사원들의 목숨을 건 대통령 경호가 부실한 안전 관리로 끝난 이 사건은 군사정권의 경호 우선주의와 은폐 문화를 상징한다.
1982년 2월 5일 새벽, 전두환 대통령의 제주도 방문에 맞춰 707특수임무대대 47명은 C-123 수송기에 탑재됐다. 목적은 대통령 경호 임무 ‘봉황새 작전’이었다.
공군은 눈보라와 강풍으로 수동장 비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이륙을 만류했으나 경호실장 장세동은 “대통령 경호가 최우선”이라며 무리하게 강행했다. 수송기는 한라산 1,060m 중턱에 추락, 탑승자 53명 전원 화염 속에서 사망했다.
당시 707 대대장은 김두청 소령으로, 최정예 대테러 부대원들이었다.
사고 직후 국방부는 “대간첩작전 훈련 중 사고” 발표하며 언론 검열에 들어갔다. 사망자 명단도 공개하지 않았고, 유가족에게는 훈련 중 사망으로 통보했다.
1989년 서재철 기자가 「말」 잡지 인터뷰에서 장세동의 강행 지시와 은폐 사실 폭로하며 진실이 드러났다. 장세동은 “날씨 확인 후 결정” 주장했으나 조종사 기록과 증언으로 허위 판명됐다.
군은 2015년 충혼비 ‘대간첩작전’ 문구를 ‘대통령 경호작전’으로 교체했다.
제주 추락사고 당시 707특수임무대대는 박희도 특전사령관이 1981년 창설한 최정예 부대였다. 대테러·요인경호 임무를 맡았으나 ‘사령관 친위대’ 오명이 붙었다.
12·12 사태 당시 정병주 특전사령관 체포 과정서 김오랑 소령이 최세창 부대에 사살된 흑역사도 있었다. 707은 대통령 경호에 과도 투입되며 위험 부담 키웠다.
제주 사고는 부대 역사상 최대 비극으로 남았다.
사고 현장 한라산 1060고지에는 2015년 유가족 요구 끝에 충혼비가 세워졌다. 비석엔 “안 되면 되게 하라” 특전사 구호와 ‘대통령 경호작전 중 순직’ 새겨졌다.
유가족은 30년간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싸웠다. 장세동은 “인명은 재천” 발언으로 비판받았다.
현재 제주 충성공원에 53위 위패 안치, 매년 추모식 열린다.
제주 추락사고는 군사정권의 ‘대통령 경호 최우선’ 사고를 상징한다. 장세동 등 경호실은 악천후 무시, 공군 안전 판단 묵살했다.
비슷한 사례로 1980년 광주 사태서 특전사 과잉 투입, 무장탈영 제압 등 경호 임무 확대가 비극 불렀다.
민주화 후 707은 대테러 전문 부대로 재편됐다.
제주 추락사고는 707특수임무대대 최대 상처로, 12·12 쿠데타 연루 오명과 함께 흑역사로 기록됐다. 그러나 대테러·인질구출 임무서 활약하며 명예 회복했다.
유가족과 특전사는 “희생 잊지 않겠다”며 충혼비 지킨다. 한라산 설원서 스러진 53영혼은 자유를 위한 대가였다.
그들의 헌신은 오늘날 특전사 정신의 뿌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