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1개 중대로 ”중국인민지원군 4개 중대를 쓸어버린” 준장
||2026.01.15
||2026.01.15
6·25 전쟁 당시 10연대 3대대장 이범준 중위가 단 1개 중대로 중국인민지원군 4개 중대(약 600명)를 격멸한 청천강 전투는 한국군의 기적적 승리로 기록됐다. 육사 8기로 해방 직후 제주4·3 반공 투쟁부터 베트남 맹호부대 군수사령관, 육군 군수사령관까지 역임한 이범준 준장은 군수 분야 전문가로 36세에 준장 진급, 국방부 방위산업차관보로 K방산 기반 닦았다. 5·16 쿠데타 중립 지킨 정통파 군인으로 11·12대 국회의원도 지냈다.
1950년 11월 청천강 전선에서 이범준 중위의 10연대 3대대는 물량 10배 중공군 공격을 막아냈다. 중국인민지원군 38군 112사단 4개 중대가 밤습격했으나 대대원 150명은 기관총·박격포 집중 사격으로 600명 격살, 200명 포로 생포했다.
이범준은 “야간 시가전 전문” 지휘로 중공군 첫 대규모 패배 안겼다. 유엔군 맥아더 원수 “한국군 용맹” 표창했다.
청천강 승리는 1·4후퇴 전환점 됐다.
1928년 강원 강릉 출신 이범준은 육사 8기로 해방 후 중위 부임, 제주4·3 남로당 무장봉기서 고립 부대 탈출하며 반공 상징 됐다. 상관 문영길 암살 위기 속 부하 설득해 탈출했다.
인천상륙작전 북진 중 송악산 고지 탈환, 박정희 9사단과 호흡 맞췄다. 전쟁 후 육군대학 졸업, 군수 장교로 전환했다.
정통파 군인으로 5·16 중립 지켰다.
1965년 베트남 파병 주월 제100군수사령관(십자성부대)으로 이범준 소장은 맹호부대 보급 담당하며 전사 최소화했다. 청조강 전투 물자 지원으로 한국군 위상 높였다.
1975년 제2군단장, 육군 군수사령관 역임하며 군 현대화 주도. 1977년 국방부 방위산업차관보로 K방산 기반 마련했다.
36세 준장 진급은 군수 분야 공로다.
5·16 당시 이범준 대령은 박정희 밀서 전달받고 망설였으나 중립 지켜 정통파로 평가됐다. 군수국장으로 군 현대화 추진, 미국 방문 수행원 됐다.
민정당 11·12대 국회의원 출마 강릉·양양 당선, 정치인 변신했다. 방위산업차관보 재직 중 한국 방산 한 단계 올렸다.
호 송현(松峴)의 군인·정치인 생애다.
이범준은 “보급이 승패 가른다” 군수 철학으로 청천강 전투서 중공군 물량전 제압했다. 1개 중대 600명 격파는 야간전·매복술 전문성 발휘였다.
베트남서 십자성부대 지휘하며 “보급 없인 전투 불가” 증명. 군수사령관으로 군 현대화 공로 인정받았다.
그의 업적은 K방산 자립 뿌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