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군대는 힘들다며 ”북한으로 월북한 일병에게” 생긴 충격적인 일
||2026.01.16
||2026.01.16
한국 군대가 너무 힘들다며 북으로 향한 김유찬 일병의 선택은, JSA 최초 한국군 월북이라는 기록과 함께 북한 체제 선전 도구로 평생 소모되는 충격적 결말로 이어졌다. 그는 힘든 군생활을 벗어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가족·학업·자유를 모두 잃고 북한의 ‘대남용 얼굴’로만 남았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1991년 3월 1일 오전 10시 10분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근무하던 한미연합사 소속 카투사 **김유찬 일병(당시 23세)**이 근무 중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으로 향했다. 성균관대학교 체육교육과 4학년으로 재학 중이던 그는 카투사로 입대해 JSA에 배치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당시 그는 방탄모에 선글라스, 권총을 지급받은 JSA 경비병 신분이었고, 남측 초소 근무 중 북측 휴게실 방향으로 뛰기 시작해 순식간에 군사분계선을 통과했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 JSA 구역을 통해 우리 측 병사가 월북한 첫 사례였다.
김유찬 일병이 북측으로 질주하자 남측 경비병들이 제지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실제로 남북 간 실탄이 오가는 긴박한 총격이 벌어졌다. 총성이 울리는 가운데 그는 끝내 북측 경비병 쪽으로 몸을 날렸고, 북측 병력은 즉시 그를 엄호하며 북측 지역으로 데려갔다.
이 사건 이후 JSA 경계 태세는 한층 강화됐고, 사병들이 장교 복장을 하고 휴가·외출을 나가게 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졌다는 증언도 남아 있다. 군 내부에서는 경계 실패·심리 관리 부실에 대한 문책과 함께, JSA 근무 체계 전반에 대한 재점검이 이뤄졌다.
월북 직후 한국 언론과 군 안팎에서는 그의 동기를 두고 여러 추측이 나왔다.
그러나 군 수사와 정보 분석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동기는 공식 확인되지 않았고, 사건 기록에도 ‘불명확’으로 남았다. 이후 평양 라디오에 등장한 김유찬은 “한국군에서의 고된 군 복무에 환멸을 느껴 월북했다”는 취지로 설명하며, 개인적 정치성향보다 ‘군생활 탈출’에 방점을 찍었다.
월북 직후 북한은 대대적인 환영 연출에 나섰다.
그가 착각했던 지점은, 북한의 군·사회 현실이 결코 ‘한국 군대보다 편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북한 일반 병사들은 장기간 열악한 식단과 과도한 노동·군사훈련에 시달리며, 흔히 말하는 “몇 년을 염장무만 먹으며 버틴다”는 수준의 궁핍한 군 생활을 한다는 증언이 계속 나와 왔다. 결국 김유찬은 한국군의 고단함을 피해 도망쳤지만, 더 폐쇄적이고 통제된 체제 속으로 들어간 셈이었다.
김유찬은 북한에서 비교적 ‘특별 관리 대상’에 가까운 대우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보도와 전단 내용에 따르면 그는 북한에서 결혼해 가족을 꾸렸고, 인민군 군관 계급으로 활동하며 일반 병사들보다 나은 생활 여건을 보장받은 것으로 묘사된다. 이는 월북자이자 대외용 인물이라는 특수성을 활용한 ‘관리형 대우’에 가깝다.
놀라운 점은, 사건 발생 후 20년이 훌쩍 지난 2016년에도 남측에서 회수된 대남 전단에 김유찬의 사진과 이름이 그대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즉, 북한은 최소 25년 이상 그를 대남 선전용 얼굴마담으로 끊임없이 재활용해 온 셈이다. 개인의 선택과 삶 전체가 하나의 정치·선전 도구로 묶여 버린 전형적인 사례다.
외형적으로는 군관 계급·가족·직업이 보장된 것처럼 보이지만, 김유찬의 삶은 본질적으로 자유와 선택을 상실한 대가였다.
북한 체제가 무너뜨리지 않는 이상, 스스로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여지도 거의 없는 구조다. 군생활의 고됨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절박함 속에서 내린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거대한 통제 구조로 들어가 버린 셈이다.
김유찬의 현재 생사와 구체적 행방은 외부에서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알려진 사실들만 놓고 보면, 다음과 같은 점에서 후회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다.
월북 당시에는 “군대가 너무 힘들다”는 절망감이 컸겠지만, 시간이 지나며 남한의 변화·경제 수준·자유를 접할수록 스스로의 선택을 되돌아봤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그를 여전히 전단·선전물에 사용하는 이상, 그의 이름은 계속 남겠지만, 정작 당사자의 목소리는 더 이상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