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김승연이 동생에게 부채 4000% 파산 직전 회사를 준 놀라운 이유
||2026.01.19
||2026.01.19
재계에서 형제 경영 분리는 늘 갈등으로 기록된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과 빙그레 김호연 회장의 서사는 그 출발부터 극단적이었다. 한 명은 그룹 전체를, 다른 한 명은 부채로 가득 찬 회사를 받았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1981년이다. 한화그룹 창업주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당시 29세였던 장남 김승연은 그룹의 전부를 승계했다. 군 복무 중이던 동생 김호연에게 남겨진 것은 부채비율 4000%에 달하는 빙그레였다.
빙그레는 사실상 파산 직전의 회사였다. 현금 흐름은 막혀 있었고 구조조정조차 쉽지 않았다. 김호연은 이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형에게 강하게 항의했고, 결국 재산 분할을 둘러싼 법정 공방으로까지 번졌다.
갈등은 오랜 시간 이어졌다. 형제는 등을 돌린 채 각자의 길을 걸었다. 관계가 다시 풀린 것은 어머니의 칠순 잔치였다. 가족 앞에서 갈등은 일단 봉합됐다.
화해 이후 김호연은 경영에 모든 것을 걸었다. 형이 넘긴 회사를 한화보다 크게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선택은 단순했다. 대중이 반복 구매하는 제품에 집중했다.
빙그레의 상징이 된 바나나맛 우유는 이 전략의 핵심이었다. 이어 메로나가 등장했다. 두 제품은 국내를 넘어 해외로 확장됐다. 브랜드는 쌓였고 매출은 반등했다.
빙그레는 더 이상 문제 기업이 아니었다. 매출은 1조원을 넘겼고 재무 구조도 안정됐다. 부채로 시작한 회사는 독립 대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성공 이후 김호연은 사회 환원에 나섰다. 독립운동가 후손을 지원하는 김구 재단을 설립했다. 기업 이익을 개인 자산으로만 남기지 않겠다는 선택이었다.
최근 김호연은 보유하고 있던 한화 지분을 모두 매각했다. 금액은 약 48억원 규모였다. 이는 형과의 경영적 연결 고리를 완전히 끊겠다는 선언으로 해석됐다.
부채 4000% 회사는 형의 냉정한 판단이었을 수도 있다. 동시에 동생의 독립을 시험한 선택이기도 했다. 김호연은 그 시험을 결과로 증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