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영웅인 간첩이 서울에 침투했는데…깜짝 놀라 자수할 뻔한 이유
||2026.01.21
||2026.01.21
1990년대 초, 서울에 잠입한 한 북한 공작원의 눈앞에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그가 목격한 것은 선전에서 들었던 ‘피폐한 남조선’이 아니라 압도적인 속도로 움직이는 도시였다. 이 경험은 이후 그의 인생과 사상을 송두리째 바꾸는 출발점이 된다.
김동식 씨가 처음 서울에 발을 들였을 때 가장 먼저 받은 충격은 거리였다. 도로 위를 가득 메운 자동차 행렬과 스텔라 택시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북한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던 풍경이었다.
도시의 스케일은 그의 판단을 더욱 흔들었다. 잠실 롯데월드와 대형 백화점, 고층 빌딩들은 체제 교육과 완전히 다른 현실을 보여줬다. 그는 이 장면을 보며 전쟁이라는 선택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느꼈다고 말한다.
서울을 파괴하는 전쟁은 곧 후진국으로의 회귀라는 계산이 머릿속을 스쳤다. 수십 년 쌓아 올린 것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행위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직감했다. 그 순간 평화 통일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현실적인 선택지로 다가왔다.
그는 한때 자수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곳에서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에 남겨진 부모와 형제의 얼굴이 발목을 잡았다.
자신의 선택이 가족에게 가해질 보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공포는 너무 컸다. 결국 그는 다시 북한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 선택은 또 다른 지옥의 시작이었다.
1차 임무를 마친 뒤 그는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 노동당 간부로 활동하며 체제 내부를 가까이서 보게 됐다. 그 과정에서 북한 사회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평양의 신발 공장은 사실상 멈춰 서 있었다. 20년 넘게 설비 투자가 없어 기계는 고장 난 채 방치돼 있었다. 노동자들은 생산 대신 기계를 닦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남한 경제력이 북한의 몇 배가 아니라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수치로 따지면 5퍼센트도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체제 선전과 현실의 간극은 상상을 초월했다.
부패는 일상처럼 굳어 있었다. 인민들이 굶주리는 사이 고위 간부 자제들은 롤렉스 시계를 차고 다녔다. 달러를 아무렇지 않게 쓰는 모습은 그에게 깊은 환멸을 안겼다.
그가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북한은 인민의 나라가 아니라 김정일 개인의 나라라는 판단이었다. 더 이상 내부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고 느꼈다.
1995년 그는 다시 침투 제안을 받아들였다. 체제를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 차라리 해외 공작으로 돈을 버는 편이 현실적이라고 판단했다.
김동식 씨의 증언은 선전과 구호가 아닌 체감의 기록이다. 남한의 평범한 삶이 북한 노동당 고위 간부보다 낫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그의 경험은 분단의 현실을 다른 각도에서 드러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