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당시 한국군 2명을 권총으로 쏜 미국 장교
||2026.01.22
||2026.01.22
6.25 전쟁 역사상 가장 처절한 사투 중 하나로 기록된 장진호 전투의 이면에 숨겨진 비극적인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미 제7사단 산하 부대를 이끌었던 돈 C. 페이스(Don C. Faith) 중령과 그가 지휘했던 부대원들의 기록이 바로 그 중심에 있다.
1950년 겨울, 페이스 중령은 새로 징집된 미군 병사들과 한국군 카투사(KATUSA) 대원들을 이끌고 장진호 전선의 최전방에 배치되었다. 당시 카투사는 현대의 위상과는 달리 충분한 실전 경험과 의사소통 능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이러한 전력의 한계 속에서 페이스 중령의 부대는 안곡 일대에서 밀려드는 중공군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페이스 중령은 가용 가능한 모든 화력을 동원해 중공군의 공세를 막아냈으나, 압도적인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그는 험난한 산세와 계곡을 따라 부대의 탈출을 시도하는 고통스러운 결단을 내렸다.
비극은 긴박한 후퇴 과정에서 발생했다. 극심한 혼란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일부 카투사 병사들이 전투를 거부한 채 부상병들이 탄 트럭에 무단으로 올라타거나 적군에게 항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페이스 중령은 부대의 군기를 바로잡고 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 트럭에 올라탄 한국군 2명을 권총으로 즉결 처형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다. 이는 전장의 질서를 유지하고 부대 전체의 궤멸을 막기 위한 지휘관으로서의 비정한 선택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투에도 불구하고 부대의 운명은 가혹했다. 최선두에서 후퇴 작전을 진두지휘하던 페이스 중령은 결국 적의 공격을 받아 장렬히 전사했다. 당시 그의 지휘하에 있던 1,053명의 병사 중 생존자는 단 181명에 불과했으며, 생존자의 대부분은 미군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진호의 혹독한 추위만큼이나 차가웠던 이 기록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이 직면해야 했던 윤리적 딜레마와 비극적인 희생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