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처리로 순직 된 군인이 ”43년 만에” 무공훈장 전사자로 인정된 이유
||2026.01.27
||2026.01.27
1979년 12·12 군사반란 당시 국방부 지하 벙커 초병으로 근무하던 23세 정선엽 병장이 반란군의 총격에 저항하다 전사한 사실이 43년 만에 공식 인정받으며 무공훈장이 수여됐다.
제대 3개월을 앞둔 젊은 병사는 반란군의 협박에도 “중대장 지시 없이는 통과 불가”를 외치다 실탄 4발을 맞고 순국했으나, 당시 국방부는 ‘오인 사격 사고’로 은폐 처리했다.
2022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의 재조사로 전사자로 복원된 그의 희생은 국가가 부정했던 역사를 바로잡는 상징적 사건이다.
1979년 12월 13일 새벽 1시 30분, 전두환 신군부가 육군본부 점거를 시도하며 국방부 지하 벙커로 진입했다.
조선대 전자공학과 휴학생 출신 정선엽 병장은 ‘진도개’ 경보 속 자원해 벙커 초소에 배치됐다.
반란군 공수대원들이 M16을 빼앗으려 하자 “지시 없이는 절대 안 된다”고 저항하다 복부·다리에 총탄 4발을 맞고 쓰러졌다.
당시 국방부는 반란군에 협조하며 정 병장 사망을 ‘총기 오인 사격 사고’로 처리, 순직자로 분류했다.
영결식은 수도통합병원에서 부대장도 아닌 가족장으로 치러졌고, 무공 포상은 꿈도 못 꿨다.
유족들은 40년 넘게 “형이 왜 그렇게 죽었는지 모르겠다”며 진상 규명을 외쳤다.
2023년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정해인이 연기한 조민범 병장 캐릭터로 정선엽의 이야기가 대중화됐다.
극중 육군본부 벙커를 지키다 총격당하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영화 흥행과 함께 12·12 희생자 명예회복 요구가 폭발하며 국방부에 재조사 압박이 가해졌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2022년 3월 재심의를 통해 “반란군 저항 중 전사” 사실을 확인했다.
같은 해 12월 7일 국방부 중앙전공상심의위원회가 ‘순직’→’전사’로 공식 변경, 무공훈장이 유가족에게 전달됐다.
대법원은 국가배상 소송에서도 “사망 사실 은폐”를 인정해 유족에게 8천만 원 지급을 확정했다.
12·12 사태 전체에서 반란 진압 중 전사한 김오랑 중령과 함께 유일한 희생자였다.
정 병장은 권총 한 자루 없이 M16으로 맞서며 국방부를 지킨 마지막 보루였다.
그의 저항은 쿠데타 성공에도 불구하고 국가 헌신의 상징으로 역사에 남았다.
국방부는 새 묘비에 ‘전사’ 명칭을 새기고 국가유공자로 등록, 보훈 혜택을 부여했다.
조선대학교는 모교생 정선엽에게 명예 졸업장을 수여하며 47년 전 휴학을 마무리했다.
유족 규상 씨는 “늦었지만 형 명예가 회복돼 다행”이라며 “이런 불행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