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정일이 들어줬다는 현대 정주영 회장의 기묘한 소원
||2026.01.28
||2026.01.28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상징이자 현대그룹의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회장이 생전 마지막으로 품었던 간절한 소망이 뒤늦게 조명받으며 잔잔한 감동과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84세의 고령이었던 정 회장이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직접 요청한 것은 사업권이 아닌, 평생 가슴에 묻어둔 ‘한 사람’을 찾아달라는 부탁이었다.
정 회장의 마음속에 살아있던 그 여인은 소년 정주영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었다. 강원도 통천의 제일가는 부잣집 딸이었던 그녀는 당시 마을에서 유일하게 동아일보를 구독하던 집안의 자제였다.
17살의 소년 정주영은 고된 농사일로 몸이 녹초가 된 상황에서도 그녀를 단 몇 초라도 보기 위해 20리 길을 쏜살같이 달려가곤 했다. 신문을 건네주는 그녀의 손을 보며 ‘천사의 손보다 곱다’고 여겼지만, 정작 가슴이 떨려 얼굴 한 번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던 순수한 소년이었다.
현대그룹을 일궈내며 세계적인 기업가로 성장한 후에도 정 회장은 67년 전의 그 소녀를 잊지 못했다. 그는 이익치 당시 현대증권 회장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에게 그녀의 소재를 파악해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정 회장의 진심은 집념에 가까웠다. 그는 그녀를 다시 만날 날을 대비해 서울 가회동에 수십억 원을 들여 함께 지낼 저택까지 마련하며 재회를 준비했다.
그러나 2000년 6월, 판문점을 지나 평양에 도착한 정 회장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비보였다.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로 북한 당국이 수개월간 전역을 수색한 결과, 그녀는 이미 2년 전 청진에서 사망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소식을 접한 정 회장은 “2년 전에만 알았더라면 아산병원으로 데려와 고칠 수 있었을 텐데”라며 깊은 탄식과 함께 아쉬움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평생을 일궈온 거대한 기업 제국도, 막강한 부도 죽음 앞에서는 무력했다.
자신의 삶을 지탱하던 마지막 희망이자 ‘마지막 잎새’와 같았던 첫사랑의 부고를 들은 정 회장은 눈에 띄게 기력이 쇠약해졌다. 결국 그는 재회에 대한 꿈이 무너진 지 몇 달 뒤인 2001년 3월, 파란만장했던 생을 마감하고 영면에 들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물의 마지막이 사업적 성취가 아닌 인간 본연의 순수한 그리움이었다는 사실은, 오늘날 우리에게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