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병 주우며 생계 이어갔다” 6.25 참전해 한국 지킨 ‘이 사람’ 아무도 몰랐던 이유!
||2026.01.29
||2026.01.29
6·25전쟁에서 함께 싸웠던 태국 참전용사 93세 찰럼 쎄땅 씨가 70년 동안 제대로 된 예우를 받지 못한 채 빈곤 속에 살아온 사실이 뒤늦게 발견됐다. 그는 전쟁 당시 자원입대했으나 참전 기록이 사라져 태국 정부의 혜택을 받지 못했고, 가족 13명과 함께 하천 옆 판잣집에서 빈병을 줍는 일로 생계를 이어갔다.
더 큰 문제는 집세 인상으로 쫓겨날 위기까지 겹친 상황이었다. 찰럼 씨의 절박한 삶은 국제 보훈 체계의 빈틈을 드러냈다. 그런 그의 상황은 한참 지나 박용민 주태 대사의 방문으로 극적인 전환점을 맞았다. 이 방문은 단순 관심을 넘어 구체적 지원으로 이어졌다.
태국은 아시아 최초로 6,326명을 파병해 6·25전에 참여한 우방국이다. 이 부대는 미국 다음으로 빠르게 결정을 내렸고, ‘리틀 타이거’ 부대라는 이름으로 의정부와 춘천 전선에서 맹활약했다. 태국군 참전은 전투력 뿐 아니라 국제 우방으로서의 결속을 보여준 사례다. 그러나 전쟁 기록 관리가 체계적이지 못해 상당수 참전용사의 공식 등록이 누락됐다. 현재 태국에 생존한 참전용사는 약 120여 명으로 추정되지만, 이들 중 많은 이가 찰럼 씨처럼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왔다. 기록에서 사라진 희생자들은 그동안 예우와 지원 정책의 사각지대에서 살아야 했다.
한국 재향군인회는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나섰다. 재향군인회는 태국 보훈청, 주태 대사관과 협력해 찰럼 씨를 포함한 3명의 참전용사에게 주택 지원을 했다. 2024년 11월 26일 입주식에는 박용민 대사와 신상태 재향군인회장 등 200여 명이 참석해 감사를 전했다. 이 사례는 정부 주도의 보훈을 넘어 민간이 주체가 된 새로운 보훈 모델로 평가된다. 특히 국가보훈부가 태국 보훈처와 체결한 양해각서는 참전용사 예우, 의료 지원, 후손 교류 등 전방위 협력의 토대를 마련했다. 민관 협력은 보훈 체계의 공백을 메우는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잡고 있다.
6·25전쟁 당시 63개국이 한국을 지원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참전용사 발굴과 예우는 소홀해졌다. 많은 국가에서 참전용사의 권리와 예우가 공식 기록과 지원 체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찰럼 씨 사례는 이 문제를 여실히 드러낸다. 이런 국제 보훈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 한국 정부는 유엔참전용사법 제정과 워싱턴 추모의 벽 건립 등 국제 보훈 강화에 나섰다. 단순히 전쟁을 기억하는 의식을 넘어, 참전자의 삶과 권리를 존중하는 국제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형성되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미 전쟁보다는 평화와 인권을 강조하지만, 참전용사의 예우는 여전히 현실적 과제로 남아 있다.
찰럼 씨의 새집은 단순한 주거 지원을 넘어 한국이 동맹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는 전략적 메시지다. 박용민 대사는 “마지막 참전용사 한 명까지 찾을 것”이라며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찰럼 씨처럼 과거의 가치가 기록 속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일은 단지 역사적 보상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국제적 연대와 신뢰의 표현이며, 전쟁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다. 이번 사례는 참전용사 개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보훈이야말로 진정한 국제 협력의 실천임을 보여준다. 앞으로도 이 같은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욱 크게 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