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가 ”1조 9천억을 갖다바치며” 한국의 전차를 대량구매한 이유
||2026.01.30
||2026.01.30
페루 육군의 지상전력은 오랫동안 ‘혼합 운용’이라는 말로 요약돼 왔다. 소련제, 서방제, 중국제 장비가 뒤섞이면서 전력의 절대 성능보다 유지·정비 문제가 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같은 부대 안에서도 부품 규격이 다르고, 정비 매뉴얼과 교육 체계가 따로 놀았다. 시간이 갈수록 가동률은 떨어졌고, 장비를 새로 들여올수록 관리 복잡성은 더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페루 국방 당국이 꺼내든 해법이 ‘부분 교체’가 아니라 ‘패키지형 현대화’였다. 전차 몇 대를 더 사는 방식이 아니라, 전차를 중심으로 장갑차·지원 차량·정비 체계·교육까지 한 번에 묶어 지상전력을 정리하겠다는 접근이다. 현지 보도가 언급한 수억 달러 규모, 약 14억 달러 수준의 사업비는 이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단일 무기 도입으로 보기엔 크고, 지상전력 구조를 갈아엎는 사업으로 보면 자연스러운 규모다.
페루가 검토한 선택지는 다양했다. 중국산 전차 제안은 가격 경쟁력이 있었지만, 이미 경험한 품질 편차와 장기 운용 리스크가 부담으로 남아 있었다. 미국의 M1 에이브람스는 성능은 확실하지만 중고 도입을 전제로 해도 유지비와 운용 부담이 컸다. 연료 소모, 정비 인프라, 부품 수급까지 고려하면 페루의 재정과 운용 환경에 맞지 않는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K2 전차가 현실적인 대안으로 부상했다. 단순히 전차 성능만 놓고 비교한 결과라기보다, 장기 운용을 전제로 한 조건들이 맞아떨어졌다는 쪽에 가깝다. 디젤 기반 동력계, 상대적으로 단순한 유지 구조, 그리고 현지 조립·생산 협력까지 포함한 제안은 페루가 원하는 방향과 일치했다. ‘싸서’가 아니라 ‘정리하기 위해’ 한국 전차가 선택지에 오른 셈이다.
이번 논의의 핵심은 K2 전차 단독 도입이 아니다. 영상과 현지 보도에서 공통으로 언급되는 부분은 차륜형 장갑차, 지원·정비 장비, 교육과 군수 지원을 묶은 패키지 구성이다. K808 장갑차 같은 차륜형 장비, 구난차와 교량 전차, 정비 차량까지 포함해 지상전력의 ‘줄기’를 하나로 통일하는 구상이다.
이 방식의 장점은 분명하다. 부품 체계가 단순해지고, 교육과 훈련 표준을 하나로 맞출 수 있다. 장비를 들여온 뒤에도 한국 측이 후속 군수지원과 기술 협력을 이어간다는 점은, 단기 도입보다 장기 안정성을 중시하는 페루의 요구에 부합한다. 그래서 14억 달러라는 숫자는 ‘전차 값’이 아니라, 지상군 체질 개선 비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이 사업은 아직 진행중이다. 페루 내부의 예산 승인, 세부 물량과 가격 조정, 현지 생산 기반 구축 논의가 남아 있다. 구매가 성사되더라도 실제 집행과 인도는 2027~2028년 전후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이 논의가 의미를 갖는 이유는, 라틴아메리카에서 한국의 고급 지상장비가 대규모로 검토되는 첫 사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페루가 해군 분야에서도 한국 업체와 협력을 추진 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육·해군 사업이 연동되는 구조로 발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단발 계약이 아니라, 중장기 파트너십의 시작점으로 보는 시선이 나오는 이유다.
페루 사례를 보면서 느낀 건, 무기 구매는 결국 ‘정리의 문제’라는 점이다. 가장 강한 전차를 고르는 게 아니라, 앞으로 20~30년을 어떻게 굴릴지를 먼저 계산한 선택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논의는 금액보다 방향이 더 중요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