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들은 ”전부 다 알 정도로 무서워하는” 한국 최고의 기밀부대
||2026.02.06
||2026.02.06
UDU는 1948년 미군 CIC(방첩대)가 한국전쟁 직전 대북공작대 창설한 것을 모태로, 1955년 해군 첩보부대(NIU) 내 특수공작원으로 공식화됐다.
초기 오키나와·괌에서 미군 네이비실 훈련 받은 30여 명이 DMZ 해상 루트로 북파, 잔류공작원 지원·북군 경비병 납치·통신망 도청 임무 수행했다.
70년대까지 연 10회 이상 북파공작으로 평양 근처 군사시설 폭파·요인 납치 성공, 육군 HID와 달리 해상 침투 특화로 생존율 높였다.
UDU 요원들은 조선인공군·인민군 복장 착용, 동해·서해 어민 위장으로 비무장지대 해변 상륙해 내륙 300km 침투했다.
보급 불가 상태서 미숫가루·생치부리·소나무껍질·개구리 주식으로 7박8일 임무 수행, 부상 시 수류탄 자폭으로 증거 소멸 원칙이었다.
북한군 해군 경비정 납치·철도 20회 폭파·지휘소 기습공격 등 200회 작전 중 70% 성공률로, 평양 지휘부가 ‘해상귀신부대’로 공포했다.
UDU는 UDT/SEAL 중 체력·정신력 1%만 선발, 일반 특공술 아닌 ‘효율적 살상술’로 1:10 격투 훈련 받았다.
포크니프·베이요넷 암살기술·극한 추위 생존·독당국 해독제 없이 72시간 버티기 등, 훈련 중 사망사고 빈발해 훈련생 40% 탈락했다.
전역 후 민간인 신분 유지하며 평생 비밀준수, 국가보훈처도 공식 기록 없이 ‘특수임무수행자’로만 보상 지급한다.
북한은 UDU를 ‘제1공수특수부대 707’보다 위협적이라 판단, 해안 경비 강화했으나 어민 위장으로 탐지 불가 상태였다.
1971년 마지막 대규모 북파공작 후 공식 자제됐으나, 90년대 서해 도서함 암살·2000년대 DMZ 잔류공작원 지원 등 비밀작전 지속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인민해방군도 황해 연평도 근처 UDU 활동 포착, 한중 해상공조 요구했으나 한국은 “존재 모름” 일관했다.
UDU 작전기록은 정보사령부 지하벙커 폐기, 전역자 회고록·口傳으로만 알려져 영화 ‘실미도’ 모티브로 추정된다.
UDT 8기 김영춘 전 경북지회장은 “북파공작 15회, 동료들 소나무껍질 먹다 탈영병 됐다”며 눈물, 사망자 유가족도 공식 보상 못 받았다.
2000년대 법적 인정 후 훈장 수여됐으나, 현역 임무는 여전히 기밀로 중국·북한 정보기관이 가장 탐내는 대상을 차단 중이다.
오늘날 UDU는 해상 드론·잠수정 침투·북한 해군 잠수함 추적·사이버 첩보 결합으로 고도화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서 북한군 동향 실시간 포착, DMZ 해상 공작원 지원 등 간접 활동으로 한반도 안보 최전선 지킨다.
북한군 장성들은 “UDU가 오면 전투 불가” 교육받을 정도로 공포 심리 고착화됐다.
UDU는 국가 안보를 위해 이름 없는 희생 택한 최후의 첩보부대로, 훈련생 사망자만 100여 명 추정된다.
미숫가루 먹으며 북파한 그들의 DNA는 707특임대·UDT에 계승, 한국 특수부대 세계 최강 전통의 뿌리다.
중국·북한이 절대 알 수 없는 기밀부대 UDU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보이지 않는 방패로 영원히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