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7특임대는 귀여운 수준” 대한민국 최초의 대테러부대
||2026.02.09
||2026.02.09
1977년 10월 독일 루프트한자 181편이 팔레스타인 테러범 4명에게 납치됐다. 모가디슈 공항에서 GSG-9 특수부대가 섬광탄과 돌입으로 5분 만에 승객 86명 전원 구출했다. 사망자 제로에 세계가 경악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보고 “한국에도 이런 부대 필요” 지시. 88올림픽 대비와 맞물려 특전사 정예로 606특공부대를 창설했다.
전원 특전사 출신으로 무술 고단자와 사격 특기자 중심 선발. 공군항공의료원 정밀검사와 신원조회 거친 후 청와대 경호실 직속 배치됐다. 부대명 606은 극비였다.
기존 공수부대와 달리 대테러 특화. HALO 고공투입·SCUBA 수중침투 훈련으로 정예화했다.
주임무는 항공기 납치 제압. 대한항공 제공 낡은 비행기를 훈련장으로 활용했다. 부대원들은 야간에 ‘납치기’로 가정하고 기내 돌입 반복. 섬광탄·최루탄 사용해 실제 전투처럼 훈련했다.
CQB 근접전투와 저격 훈련도 병행. 승객 구출 우선 원칙으로 무자비한 제압술 연마했다.
1982년 국가대테러지침 제정 후 707특수임무대대 창설. 12.12 사태 특전사령관 체포 사건으로 사령관 직속 친위대 성격도 띠었다. 606의 대테러 노하우 전수받아 고공·해상·특공지역대 4개 편성.
707은 탈영병 제압 등 실전 경험 쌓으며 정예화. 606은 1993년 해체됐으나 DNA가 707에 살아있다.
606은 언론에 노출 제로. 박정희 암살 후 경호실 산하에서 은밀 운용됐다. KAL기 폭파사건 때 북파 보복작전 계획했으나 실행 못했다.
문민정부 들어 ‘박정희 유산’으로 간주돼 해체. 자료 대부분 파기돼 미스터리 부대로 남았다.
독일 GSG-9처럼 섬광탄 돌입·정밀저격 강조. 싱가포르 STAR 등 해외 부대와 교류하며 기술 습득했다. 부대원 신상은 2급 군사기밀.
707이 공개 활동 늘어난 반면 606은 영구 암흑 속. 최초 대테러부대의 비극적 최후였다.
606 해체 후 707이 국가대테러 주임무 이어받았다. 2024 계엄사태 국회 진입 등 논란도 있었다. 그러나 606의 항공기 침투술은 오늘날 707 핵심 전술이다.
박정희의 선견지명으로 시작된 대테러 역사는 606에서 707로 이어져 한국 안보를 지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