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위였던 한국 대기업 하루아침에 망해버린 소름돋는 이유
||2026.02.11
||2026.02.11
대한민국 경제사에서 ‘절대 침몰하지 않는 배’로 불리던 기업이 있었다. 삼성과 LG가 가전 전쟁을 벌일 때 그 혈맥인 전선을 독점하며 54년간 단 한 번의 적자도 기록하지 않았던 ‘현금 요새’, 바로 대한전선이다.
하지만 이 거대 요새가 무너지는 데는 채 5년이 걸리지 않았다. 오너의 갑작스러운 부재와 전문 경영인의 탐욕, 그리고 무분별한 사업 확장이 불러온 비극은 오늘날 우리 기업 경영에 서늘한 경종을 울린다.
대한전선의 창업주 설경동 회장은 지독한 검소함으로 유명했다. 다 쓴 달력 뒷면에 편지를 쓰고, 식당 냅킨을 아껴 쓰던 그의 ‘짠돌이 정신’은 기업 경영의 근간이 되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지 않는 신중함 덕분에 1997년 외환위기(IMF) 당시 수많은 대기업이 쓰러질 때도 대한전선은 넘치는 현금을 보유하며 ‘망할 수 없는 회사’로 불렸다.
2대 설원량 회장 역시 부친의 철학을 계승해 비핵심 사업인 가전 부문을 과감히 정리하고 초고압 케이블 등 본업에 집중하며 세계적인 기술력을 확보했다. 2003년 기준 대한전선은 부채 비율이 업계 최저 수준인 알짜 기업이었다.
비극은 2004년 설원량 회장이 62세의 나이에 뇌출혈로 급서하며 시작되었다. 당시 후계자인 장남 설윤석은 23세의 대학생에 불과했다. 경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전권을 위임받은 인물은 가신 출신의 임종욱 부회장이었다. 섭정의 자리에 오른 그는 ‘공격적 투자’를 명분으로 광란의 쇼핑을 시작했다.
전선과는 무관한 속옷 업체 쌍방울, 무주리조트, 남광토건 등을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3~4년 사이 2조 원에 달하는 자금이 무리한 확장에 투입되었고, 2005년 7,000억 원이던 부채는 2008년 2조 5,000억 원으로 폭증했다.
이 과정에서 임 부회장의 횡령과 배임까지 더해지며 회사의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결국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파고를 넘지 못한 채, 2009년 대한전선은 창립 54년 만에 첫 적자를 기록하며 침몰했다.
오너 3세 설윤석 사장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사재를 출연하고 본사 사옥까지 팔며 고군분투했으나, 쏟아진 빚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2013년 채권단의 최후통첩 앞에 그는 “선대 회장님과 주주들께 죽을 죄를 졌다”며 58년 가족 경영의 종지부를 찍고 경영권을 포기했다.
이후 사모펀드 관리를 거쳐 2021년 호반그룹에 인수된 대한전선은 2026년 현재, AI 데이터 센터 열풍과 신재생 에너지 수요 급증이라는 ‘슈퍼 사이클’을 타고 부활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매출은 3조 원대를 돌파했고, 당진에 대규모 해저 케이블 공장을 건설하며 역대 최대 수주 장고를 기록 중이다.
화려한 부활 뒤에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현재 대한전선은 경쟁사인 LS전선과 해저 케이블 기술 유출을 둘러싼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 유죄 판결 시 수천억 원의 배상금과 공장 가동 중단이라는 치명적인 리스크를 안게 된다. 또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감자와 증자를 반복하며 희생된 소액 주주들의 상처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