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걸 알면서도 ”내 자식들이라며” 구출도중 전사한 UDT 군인
||2026.02.23
||2026.02.23
한주호 준위는 1975년 해군 하사로 입대해 무려 35년을 특수전 여단(현 특전전단)에만 몸담은 정통 UDT 요원이었습니다.
2009년에는 50대 나이에도 “실전을 더 경험하겠다”며 소말리아 파병 청해부대 1진에 자원, 해적 제압작전에 참여하며 전우들에게 **‘사나이 UDT’**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2010년 3월 26일 밤, 백령도 인근에서 천안함이 폭발·침몰하자 46명의 해군 장병이 실종됐습니다.
당시 한주호 준위는 작전부서가 아닌 작전지원대에 근무 중이었지만, 누구보다 먼저 구조팀에 자원했습니다.
“내가 경험도 많고 베테랑이니 직접 들어가겠다.”
UDT 후배들은 이미 강한 조류와 40m 깊이의 펄바닥, 낮은 수온에 녹초가 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몸 상태보다 바다 속에 갇힌 후배들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3월 30일, 사고 나흘째 되는 날. 한 준위는 동료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안으로 모든 실종자들을 내가 책임지고 구조해내겠다.”
그는 곧바로 함수(배 앞부분) 수색조에 편성돼, 수심 40m, 펄 속에 파묻힌 천안함 내부 진입용 인도줄 설치 작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미 반복 잠수와 장비 부족으로 몸 상태는 한계에 가까웠지만, 구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오후, 그는 거센 유속과 높은 수압, 펄이 뒤섞인 시야 제로의 환경에서 다시 한 번 물속으로 내려갔습니다. 곧이어 호흡곤란·탈진 증세를 보이며 수중에서 의식을 잃었습니다.
동료들이 급히 끌어올려 인근 미 해군 구난함 **USS 살보(Salvor)**의 감압 챔버로 옮겨 치료했으나, 오후 4시30분~5시경 잠수병(감압병)으로 순직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당시 상황을 두고 이렇게 설명합니다.
동료 잠수요원에 따르면, 한 준위는 이미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자식 같은 애들이 물 아래 있다”**며 스스로 장비를 들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몸이 돌아오기 힘들 수 있다는 걸 알고도 물속으로 들어갔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한마디가 더 뼈아프게 남습니다.
“오늘 안에 애들 다 건져내겠다.”
국방부는 그의 공로를 인정해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고, 언론과 군은 그를 **“천안함 46용사와 함께 기억해야 할 47번째 용사”**로 불렀습니다.
동상 속 그는 **“불가능은 없다”**라는 특전전단의 구호를 배경으로, 여전히 굳게 총을 쥐고 바다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의 순직 이후, 구조체계와 안전규정 미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컸습니다.
하지만 이런 논쟁과 별개로, 한주호 준위의 선택 자체는 분명했습니다.
작전지원부서에 있었음에도 “내가 직접 들어간다”며 자원했고,
몸이 망가져 가는 걸 알면서도 “내 자식 같은 애들”을 두고 돌아서지 못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