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수석대표가 ”북한은 핵을 가질 수 없다고” 폭탄 발언한 이유
||2026.02.25
||2026.02.25
정부 북핵 수석대표가 제네바 군축회의에서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를 가질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못 박으며 파장을 일으켰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와 유엔 안보리 결의를 전면에 내세운 발언으로, 사실상의 핵보유국을 자처하는 북한 주장에 정면으로 제동을 건 것이다.
정연두 외교부 외교전략정보본부장(정부 북핵 수석대표)은 23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군축회의(CD) 고위급 회기 기조연설에서 한국 정부의 ‘3단계 비핵화 구상’을 공식 소개했다. 그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구축 목표를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다”며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중단–축소–폐기의 단계적 비핵화 방안을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구상은 ① 1단계에서 북한 핵·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의 중단(동결), ② 2단계에서 핵전력 축소(감축), ③ 3단계에서 최종 **폐기(해체)**로 나아가는 점진적 접근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유엔총회와 언론 인터뷰에서 제시한 ‘동결–축소–비핵화’ 로드맵을 외교 현장에서 구체화한 셈이다.
정 본부장의 핵심 메시지는 NPT 법리였다. 그는 “북한은 NPT 체제 혜택을 누리다가 일방적으로 탈퇴를 선언하고, 이후 공개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한 유일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NPT에 따라 북한은 결코 핵보유국 지위를 가질 수 없다”고 못 박았다.
NPT는 미국·러시아·영국·프랑스·중국 5개국만을 ‘합법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그 외 국가는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는 비핵보유국 지위를 전제로 체제에 가입한다. 북한은 1985년 가입 후 사찰 회피와 위반 논란 끝에 2003년 탈퇴를 선언했지만, 국제사회는 이를 정식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정 본부장의 발언은 이 국제법적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정 본부장은 북·러 군사협력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경고를 쏟아냈다. 그는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협력은 국제 평화와 안보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며 “관련 당사국들은 유엔 안보리 결의를 철저히 준수하고 협력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의 러시아 탄약·미사일 지원과 러시아의 군사기술·위성기술 이전 가능성은 이미 안보리 결의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한국 정부가 군축회의라는 다자 무대에서 북·러 밀착을 직접 겨냥한 것은, 향후 추가 제재나 국제 여론전의 명분을 쌓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정 본부장은 한반도 문제를 넘어 글로벌 핵군축 환경 악화를 우려했다. 그는 “국제 안보 환경이 악화하고 군축·비확산 체제가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며 “최대 핵보유국들 사이에 어떠한 양자 핵군비통제 협정도 발효 중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미·러 간 유일한 핵군축조약이던 ‘신전략무기감축조약(뉴스타트)’이 2월 초 발효 15년 만에 종료되면서, 전략핵·운반체 증강에 사실상 제한이 사라진 상황을 겨냥한 발언이다. 이 조약은 양측 배치 핵탄두를 1550기, ICBM·SLBM·전략폭격기 등 운반수단을 700기 이하로 묶고 상호 사찰을 의무화해 왔다.
정 본부장은 “핵 군축의 실질적 진전을 달성하고 군비경쟁을 방지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을 확고히 지지한다”며, 미국이 제안한 다자간 전략적 안정 논의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뉴스타트를 대체할, 중국 등 타 핵보유국이 참여하는 새로운 군비통제 체제 구상을 언급해온 것과 궤를 같이한다.
한국 정부는 이번 발언을 통해 두 축의 외교 전략을 부각했다. 하나는 ‘중단–축소–폐기’ 단계적 비핵화 접근으로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뉴스타트 이후 공백을 메우는 다자 군비통제 구상에 적극 동참함으로써 중견 핵위협 당사국으로서 존재감을 높이려는 시도다.
정 본부장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긴밀한 공조를 유지하며, 변화하는 안보 환경을 반영한 다자적 전략 안정 논의를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미·러·중 핵경쟁 관리와 연계해 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발언으로 평가된다.
정연두 본부장은 끝으로 “북한이 우리의 진정성 있는 노력에 호응해 건설적인 대화에 참여하고, NPT 및 관련 유엔 안보리 결의를 준수할 것”을 거듭 촉구했다. 사실상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인정 요구’를 일축하고, NPT 체제 내 비핵국 지위로의 복귀를 전제로 한 협상만 가능하다는 선을 그은 셈이다.
정부는 이번 제네바 발언을 계기로 미·일·EU 등과 공조해 북핵 문제를 군축·비확산 전체 의제 속에 위치시키려는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이를 ‘적대시 정책’으로 규정하며 반발할 가능성이 큰 만큼, 향후 한반도 긴장과 외교전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