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고(産苦)의 고통을 겪으며 얻어낸 지식, 소크라테스의 ‘산파술’
||2026.02.26
||2026.02.26
[EPN 교육정책뉴스 왕보경 기자]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은 상대방에게 질문을 던져 무지(無知)를 깨닫게 함으로써 사물에 대한 올바른 개념에 도달하게 하는 방법이다.
소크라테스의 어머니는 산파였다. 소크라테스는 어머니가 산모의 출산을 돕는 과정을 지켜보며 자랐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소크라테스의 교수법에도 영향을 끼쳤다. 소크라테스는 교수자가 강제적으로 학습자에게 지식을 주입할 수 없다고 여겼다. 학습자가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 교수자가 할 일이라 판단했다. 교육자는 산파처럼 학습자의 교육을 돕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에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스스로 무지를 깨닫고 사물의 진리를 올바르게 깨치게 만드는 일. 그것이 교육자가 할 역할이라고 여긴 것이다. 질문을 통해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게 하는 교육법을 생명의 탄생을 돕는 산파에 비유해 '산파술'이라고 불렀다.
"민중이란 누구인가?"
"가난한 이들입니다.
"가난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이지?"
"돈에 늘 쪼달리는 사람이지요."
"부자들도 돈이 부족하다고 늘 하소연하는데, 그러면 부자도 가난한 사람이지 않나?"
"음... "
"그렇다면 '민중이 주체가 된다'는 민주주의는 가난한 사람들과 부자 중 누구의 정체(政體)인가?"
소크라테스는 제자에게 완전한 결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제자가 스스로 깨닫고 성찰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진다. 원래 알고 있던 지식을 깨우칠 수 있도록, '산파'같은 길잡이이자 도우미 역할을 한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은 소극적인 산파술과 적극적인 산파술로 나뉜다. 전자는 대화 상대에게 논리적인 설명을 이끌어내며, 무지를 가장하는 태도를 말한다. 적극적인 산파술은 상대방이 제시한 논리적 설명과 질문을 거듭함으로써 개념 규정을 음미하고 당사자가 인식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상을 낳게 하는 문답법이다.
소크라테스는 특히 '무지(無知)'의 자각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아포리아'로부터 철학이 시작된다고 믿었다. 무지를 깨닫게 하려고 대화 상대를 '아포리아'에 빠뜨리기도 했다. '아포리아'는 해결의 방도를 찾을 수 없는 난관을 의미한다. 상대방을 아포리아에 빠뜨리면서, 그들의 의견에 논리적인 모순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소크라테스는 아포리아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대화 상대가 잘못된 논리구조를 인식하며 지혜를 깨우치고, 철학이 생겨난다고 생각했다. 무지의 자각을 통해 자만하거나 잘못된 신념을 가지는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고 겸손한 태도를 갖고자 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 철학자가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사고를 유도하고 무지를 깨닫고 올바른 개념을 도출해 내도록 하는 교육관을 가진 '교육자'였다.
그는 자신이 아테네 시민이 진리를 분만하게 돕는 '산파'라고 생각했다. 산모가 느끼는 고통처럼 '산고'를 겪으며 깨달은 철학을 상대방이 체화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교육 철학은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 과정과는 상이하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은 한국의 주입식 교육 체제와는 정 반대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 학생은 '가르침 받는 사람'으로 확연히 구분돼 있다. 지식을 창출해 내는 것도 모두 교사만의 전유물이었다.
기원전 469년에 살던 소크라테스도 주입식 교육은 멀리하고 자기 주도 학습을 옹호했다. 이제는 학생과 교사 모두 전형적인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각자 새로운 역할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든다. 가르치는 사람에서 조력자로, 획일화된 지식을 머릿속에 채우는 사람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사람으로 말이다.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력 넘치고 비판적인 인재가 되기 위해선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