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법부, 18살 소년에게 사형 선고
||2026.02.27
||2026.02.27
1984년 당시 18살 미성년자였던 김성철은 대한민국 사법 사상 유례없는 중죄를 저질러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는 한 여성을 집단 성폭행한 후 손발을 묶어 저수지에 던지는 등 소년이라는 범주를 넘어서는 잔혹성을 보였다. 물 위로 떠올라 생존을 갈구하는 피해자를 확인하자 그는 앞장서서 다시 피해자의 생명을 앗아가는 악행을 저질렀다.
김성철의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훔친 차량을 이용해 대구 일대를 누비며 수십 차례에 걸친 범죄를 이어갔다. 그는 연이은 절도와 성범죄를 저지르는 과정에서 피해자들로부터 수천만 원에 달하는 금품을 강탈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1980년대 당시 수천만 원은 엄청난 거액이었으며 그의 범죄 행각은 공권력을 비웃듯 도시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1985년 법원은 미성년자인 김성철에게 이례적으로 단호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며 사형이라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범행의 잔인함과 반인륜적 성격을 고려할 때 미성년자라는 이유만으로는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 판결은 당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소년범에 대한 처벌 수위를 두고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사형 판결 이후 종교계와 해외 인권 단체들은 미성년자에 대한 사형 집행은 가혹하다며 구명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쏟아냈다. 하지만 법무부는 범죄의 중대성과 국민적 법감정을 우선시하여 이들의 탄원을 받아들이지 않고 형 집행 절차를 밟았다. 결국 사형 선고 4년 뒤인 1989년 김성철은 23살의 나이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며 생을 마감했다.
김성철과 함께 범행을 공모했던 공범 이유동 역시 같은 날 사형이 집행되어 형장의 이슬이 되었다. 놀랍게도 이유동은 범행 당시 나이가 불과 16살에 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범죄의 중대성에 따라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이는 대한민국 사법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대의 가해자들에게 내려진 가장 강력하고도 처참한 처벌 기록으로 남았다.
당시의 판결은 오늘날까지도 범죄 예방을 위한 엄벌주의와 교화를 목적으로 하는 온정주의 사이의 갈등을 시사한다. 누군가는 극악무도한 범죄에 나이가 장벽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당시의 단호한 집행을 옹호하기도 한다. 반면 다른 이들은 어린 청소년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생명을 뺏는 방식이 정당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사건이 발생한 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김성철 사건은 소년법 개정 논의가 나올 때마다 상징적인 사례로 인용된다. 피해자의 고통과 가해자의 나이 중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숙제로 남아있다. 당시 대구 일대를 공포에 떨게 했던 소년들의 범죄는 법의 엄격함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가 되었다.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10대 소년들에게 내려진 사형 선고는 당시 군사 정권 하의 서슬 퍼런 분위기를 반영하기도 한다. 법의 관용보다는 사회 질서 확립과 범죄에 대한 경고 메시지가 더 강력하게 작동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김성철과 이유동의 사례는 미성년자라 할지라도 법의 심판대 위에서는 예외가 없음을 보여준 극단적인 사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