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근, 간첩 혐의… 뒤늦게 밝혀진 사실
||2026.03.01
||2026.03.01
과거 ‘이중간첩’으로 몰려 사형까지 선고받았던 고(故) 이수근의 비극적 삶이 재조명됐다. 지난 19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는 ‘이수근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루며 한 인물의 극적인 탈출과 억울한 최후, 그리고 뒤늦은 무죄 판결까지의 과정을 조명했다. 사건은 지난 1967년 3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시작됐다. 군사정전위원회 회의가 열리던 날, 북한 기자 한 명이 탈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파장이 일었다.
당시 이수근은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이자 김일성 수행기자 출신의 북한 고위급 언론인이었다. 그의 귀순은 당시 대한민국 사회를 뒤흔든 초대형 사건이었다. 탈출 과정은 영화 같은 긴박함 속에서 전개돼 긴장감을 더했다. 회의 종료 직후 유엔군 차량의 문이 열리는 순간 그는 몸을 던졌고, 총격이 오가는 상황 속에서 차량은 시속 120km로 판문점을 빠져나왔다.
북한군이 발사한 총탄은 40발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이수근은 ‘자유의 용사’로 불리며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당시 서울 도심에는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그러나 귀순 1년 만에 상황은 급변했다. 이수근이 위조 여권과 변장한 모습으로 공항에 나타났고, ‘이중간첩’ 혐의로 체포돼 논란이 일었다. 그의 판문점 탈출이 북한의 지령에 따른 연극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여론은 순식간에 돌아섰다. 심지어는 거리에서는 인형을 불태우는 화형식까지 벌어져 충격을 더했다. 특히 그는 지난 1969년 3월, 귀순 2주년이 되는 날 그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형은 불과 54일 만에 집행됐다. 이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 1986년, 판결을 뒤흔드는 보도가 나왔다. 조갑제 기자가 ‘이수근은 간첩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기사를 내며 의문을 제기했다. 이미 사형이 집행된 사건에 대한 재검토가 시작된 것이다.
이수근은 귀순 이후 반공 강연자로 활동했지만, 김일성을 강하게 비판할수록 북한에 남은 가족이 위험해질 수 있는 처지였다. 그로 인해 보인 미묘한 태도가 정보기관의 의심을 키웠고, 그는 상시 감시 대상이 됐다. 집과 차량, 통화는 도청됐고, 폭행과 협박이 이어졌다는 증언도 나왔다. 결국 그는 “북쪽이 싫어서 왔는데 남쪽도 자유는 없었다”라며 중립국 망명을 시도했으나 베트남에서 체포돼 안타까움을 샀다. 이후 밝혀진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중앙정보부가 관리 대상 인물의 해외 이탈 책임을 덮기 위해 그를 간첩으로 규정했다. 특히 전기와 물고문, 폭행 등을 동원한 가혹행위 끝에 허위 자백을 받아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하지만 고 이수근은 지난 2018년 사형 집행 49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이 같은 사례는 자유를 찾아 남으로 왔지만 남과 북 어디에서도 온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했던 한 인물의 삶은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단면으로 남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