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안, 요양병원서 별세… 빈소 ‘텅텅’
||2026.03.27
||2026.03.27
과거 군사정권 시절 강압 수사와 고문으로 유명한 이근안 전 경감이 끝내 사망했다. 지난 26일 경기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근안은 최근 건강 악화로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 입소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 25일 요양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향년 88세 나이로 숨졌다. 한 복지센터 관계자는 이근안에 대해 “전립선암이 있었고 신장도 아파 혈액 투석까지 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멀쩡한 장기가 없었다”라고 덧붙였다.
또 그의 가족들은 1년에 한 번씩 그를 찾아왔다고 전해졌다. 이처럼 이근안은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이근안의 빈소는 서울 동대문구의 한 장례식장 한쪽에 마련됐다. 그러나 빈소는 마치 그의 과거 행보에 대한 업보인 것처럼 적막이 흘렀고 텅텅 빈 모습이었다. 이때 이근안의 아들은 취재진을 향해 “왜 피해를 주냐”라고 말하며 분노를 드러내기도 했다.
한편 이근안은 1970~80년대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활동하며 여러 공안 사건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당시 그는 전기고문 등 가혹 행위를 통해 피의자들에게 자백을 강요했다는 의혹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이로 인해 ‘고문 기술자’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특히 그는 남민전 사건과 김근태 전 민청련 의장 고문 사건을 비롯해 여러 사건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고인의 과거사 규명이 진행되면서 그는 지난 1988년 수배됐으며 약 12년간 도피 생활을 이어갔다.
이후 이근안은 지난 1999년 끝내 자수한 뒤 고문과 불법 구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그는 대법원에서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출소 후에는 목사로 활동하며 과거 논란과는 별개로 종교 활동을 왕성히 했다. 특히 이근안은 종교 활동 중 과거의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반성한다는 발언을 하며 뉘우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행위를 ‘애국’이라고 비유해 또 다시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근안 지난 2010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도 “지금 당장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똑같이 일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 이어 “당시 시대 상황에서는 ‘애국’이었으니까. 애국은 남에게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이근안은 생전 자서전을 통해 “간첩과 사상범을 잡는 것은 애국이었다”라는 발언을 해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