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최은희, 투병 끝 별세… 추모 계속
||2026.04.16
||2026.04.16
배우 故 최은희가 세상을 떠난 지 8년이 흘렀다. 2026년 4월 16일은 고 최은희의 8주기 기일로 고인은 지난 2018년 4월 16일 영면에 들었다. 향년 92세. 생전 고 최은희는 신장 투석을 비롯해 각종 합병증으로 인해 오랜 기간 투병하며 병마와 싸워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장남은 당시 “어머니가 신장 투석을 받으러 병원에 가셨다가 돌아가셨다”라고 비보를 전했다. 1926년 경기도 광주에서 출생한 고 최은희는 1942년 연극 ‘청춘극장’ 무대를 통해 연기 인생의 첫발을 뗐다.
이후 1947년 영화 ‘새로운 맹서’로 스크린에 데뷔한 그는 ‘밤의 태양’, ‘마음의 고향’ 등에서 열연하며 단숨에 스타가 됐다. 특히 김지미, 엄앵란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1950~60년대를 풍미한 원조 트로이카의 주역으로 대중의 뜨거운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고 최은희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바로 단짝이자 동지였던 신상옥 감독이다. 1953년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 촬영 중 신상옥 감독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그는 이듬해 화촉을 밝혔다. 이후 두 사람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견인했다.
‘어느 여대생의 고백’을 통해 대종상의 전신인 제1회 국산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연기력을 입증한 고 최은희는 ‘꿈’, ‘지옥화’, ‘춘희’,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 약 130여 편의 작품을 남기며 명실상부한 당대 최고의 배우로 군림했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는 극적인 부침도 있었다. 신상옥 감독과 이혼한 고 최은희는 1978년 1월 홍콩 방문 중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되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것이다. 이어 신상옥 감독 역시 그해 7월 납북됐으며 두 사람은 1983년 북한 땅에서 극적으로 재회했다.
북한 체류 당시 신필름 영화 촬영소 총장을 맡아 운영했던 두 사람은 총 17편의 영화을 찍은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기적 같은 탈출은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뤄졌다. 현지 방문 중 미국 대사관으로 진입해 망명에 성공한 두 사람은 10년이 넘는 망명 생활을 보낸 끝에 1999년 마침내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2006년 4월 11일 평생의 동반자였던 신상옥 감독을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고 최은희는 급격히 기력이 쇠했다. 건강 회복에 힘썼으나 안타깝게도 기력을 회복하지 못한 채 은막의 별로 남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