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인도네시아가 작정했다” 직접 만들겠다는 한국의 ‘주력 전투기’
||2026.04.27
||2026.04.27
국산 전투기 KF-21 보라매가 마침내 첫 수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한국은 공동개발국인 인도네시아와 KF-21 16대 수출을 놓고 막바지 협의를 진행 중이며, 이달 말 예정된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국빈 방한 시 수출 계약 ‘협약’ 체결이 유력하다.
수출 물량은 우선 16대로 합의하고, 금액과 세부 조건을 조율해 상반기 안에 정식 계약서에 서명하는 일정이 거론된다. 처음부터 48대를 꿈꾸던 인도네시아가 예산 사정으로 숫자를 줄였지만, 한국 입장에선 “국산 전투기 첫 해외 고객”이라는 상징성이 훨씬 크다.
이번 협상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인도네시아가 단순 구매국이 아니라 ‘생산 파트너’로 나서겠다고 먼저 제안했다는 점이다.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KF-21 일부 부품을 자국 국영 항공우주기업 PTDI(디르간타라 인도네시아)가 제작해 한국으로 보내고, 한국에서 최종 조립하는 방식을 타진해 왔다.
핵심 기체 구조·임무컴퓨터·레이더 등 민감 영역은 한국이 전담하되, 비교적 위험 부담이 낮은 구조물·일부 시스템을 인도네시아에 ‘하청 생산’하는 형태다. 이렇게 되면 인도네시아는 단순 도입국이 아니라 KF-21 생산 체인의 한 축으로 들어가고, 한국은 기술 주도권을 유지하면서도 수출 파트너의 재정 부담을 줄여 줄 수 있다.
한국이 이런 구조에 비교적 자신이 있는 이유는, 이미 KT-1 기본훈련기 수출에서 비슷한 모델을 성공시킨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KT-1는 2000년대 인도네시아·터키·페루에 수출될 때, 첫 몇 대는 한국에서 완제품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현지 조립·부분 생산 방식으로 공급했다. 페루의 KT-1P 20대 가운데 4대는 한국이 만들고, 16대는 현지 국영 항공사 세만이 조립·생산하는 구조였고, 이를 위해 KAI는 라스팔마스 공군기지 격납고를 개보수해 현지 공동 생산선을 구축했다.
이런 모델은 도입국의 고용·기술 이전 요구를 만족시키면서도, 한국이 설계·핵심 부품 공급을 쥐고 품질과 납기를 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번 KF-21–인도네시아 협상은 “훈련기 때 써본 현지 생산 카드”를 훨씬 더 고난도인 4.5세대 전투기로 확장하는 시험대에 가깝다.
관건은 인도네시아 항공우주산업의 수준이다. PTDI는 CN-235 수송기 라이선스 생산과 자체 수송기·헬기 개조 경험을 가진 업체지만, 초음속 전투기 구조물·부품은 난도가 전혀 다르다. 한국 내부에서도 “KT-1 수준의 프로펠러 훈련기와 KF-21은 요구 정밀도·품질관리 난이도가 다르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그럼에도 일부 비핵심 부품부터 단계적으로 맡기고, 품질·납기 성적표를 보며 범위를 조절하는 방식이라면 인도네시아의 산업 역량을 무리 없이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인도네시아는 현지 생산 참여를 통해 도입 단가 일부를 상쇄하고, KF-21 운용 이후 유지보수(MRO) 역량까지 확보할 수 있어 장기 운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외교·군사 소식통들은 KF-21–인도네시아 협력을 “동남아 수출의 교두보를 확보하는 포석”으로 본다. 말레이시아·필리핀 등 동남아 여러 나라가 노후 F-5·MiG-29·호크 전투기 교체 사업을 준비 중인데, 인도네시아가 생산·정비 파트너로 들어간 KF-21은 가격 경쟁력과 역내 네트워크를 동시에 갖춘 카드가 될 수 있다.
PTDI가 일부 부품 생산과 MRO 허브 기능을 맡으면, 주변국 입장에선 “비행기는 한국 설계지만, 가까운 인도네시아에서 정비·훈련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생긴다. 실제 정부 관계자들은 “KT-1이 인도네시아·터키·페루를 거쳐 추가 수출을 이어갔듯, KF-21도 인도네시아를 통해 동남아 시장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고 전망한다.
KF-21 개발 과정 내내 인도네시아는 분담금 미납과 기술 이전 요구로 ‘리스크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 분담금을 줄여 달라고 요구하는 대신 시제기 1대를 양도받는 등 조건 재조정이 이어지면서, 한국 여론에선 “먹튀 아니냐”는 비판도 컸다. 그런데 이번 부품 생산 제안은 인도네시아가 “돈만 깎아 달라”에서 “우리가 뭔가를 책임지고 만들겠다”로 태도를 바꾸려는 신호로 해석된다.
한국도 군사적 가치가 크지 않은 시제기 1대를 양도해 주는 대신, 기술 이전 수준을 제한하고 부품 하청·MRO 중심의 역할을 맡기는 쪽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갈등이 많았던 공동개발 파트너를 “수출형 파트너”로 재포지셔닝 할 수 있다면, KF-21 전체 사업 안정성에도 도움이 된다.
KF-21 보라매는 인도네시아와의 분담금 갈등, 미국산 부품 수출통제 가능성 등으로 한동안 “수출 전망이 불투명한 사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16대 초도 수출, 시제기 1대 양도, 부품 일부 현지 생산이라는 입체적인 패키지가 동시에 논의되는 단계까지 와 있다.
16대라는 숫자만 놓고 보면 크지 않아 보이지만, 국산 전투기 첫 해외 고객이자 동남아 허브를 동시에 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 의미는 훨씬 크다. KT-1이 “국산 항공기 수출 시대를 연 문”이었다면, KF-21은 “국산 전투기가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 안으로 들어가는 첫 계단”이 될 수 있다. 이번 방한에서 어떤 문구로 협약이 맺어지느냐에 따라, 향후 10년 동남아 전투기 시장 지형도 함께 달라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