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잠수함 수주를 걸고” 한국과 정면 충돌 중이라는 의외의 나라
||2026.04.27
||2026.04.27
그리스 해군의 차기 잠수함 4척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한국 한화오션과 프랑스 나발 그룹이 유럽 재군비 한가운데에서 정면 승부를 벌이고 있다. 그리스는 1970년대 도입한 글라우코스·포세이돈급을 퇴역시키고, 214HN 4척은 성능 개량을 병행하는 대규모 현대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신형 잠수함과 기존 함정 업그레이드, 각종 지원 인프라를 합친 사업 규모는 수십억 유로에 이르며, 향후 30년 그리스 해군의 수중전력 구조를 재설계하는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리스는 영국 Surface Fleet Technology 행사 등에서 요구 조건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공기불요추진(AIP) 체계와 리튬이온 배터리, 고도의 자동화, 특수부대 수용 공간, 저소음 설계 등이 사실상 필수 요건으로 제시돼 있다.
여기에 대함·대지 미사일 운용 능력, 무인체계 연동, 하드킬·소프트킬을 결합한 대어뢰 방어 체계까지 요구해, ‘멀티 롤’ 재래식 잠수함을 상정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신형 잠수함과 214HN 개량 과정에 그리스 조선·방산업체가 최소 25% 이상 참여해야 한다는 조건까지 붙으면서, 단순 수입이 아닌 산업 동반 성장을 전제로 한 사업이 됐다.
한국 정부와 한화오션은 KSS-III 배치II(도산 안창호급 계열) 4척을 그리스 조선소와 공동 건조하고, 동시에 214HN 4척 성능 개량을 수행하는 통합 패키지를 제안했다. 이 제안은 노후 209급 교체와 214급 업그레이드를 한 번에 처리하는 구조로, 전력 공백을 최소화하면서 작전 효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KSS-III는 약 3,000톤급, AIP와 장거리 순항·탄도미사일 탑재 능력을 갖춘 플랫폼으로, 장기 잠항과 대지 타격이 가능한 ‘중형 전략 잠수함’으로 평가된다. 한화오션은 캐나다·폴란드 사업에서 입증한 설계·건조 능력과 더불어, 그리스 최대 조선·방산 기업 ONEX와 전략적 협약을 체결하며 현지 건조·정비 체계 구축 의지를 분명히 했다.
프랑스 나발 그룹은 네덜란드 차기 잠수함 사업에서 이미 채택된 ‘블랙소드 바라쿠다’를 앞세워 그리스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블랙소드는 핵잠 쉬프랑급 계열을 재래식으로 변형한 설계로, 약 20노트급 수중 최고속도, 장거리 항속, F21 어뢰·엑소세·장거리 순항미사일 등 최대 30발 무장 탑재 능력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나발 그룹은 FDI 프리게이트 사업을 통해 이미 70여 개 그리스 기업과 100건이 넘는 계약을 맺은 경험을 바탕으로, 스카라만스 조선소를 최종 조립 거점으로, 메트렌을 선체 블록 공급사로 참여시키는 산업 모델을 제안했다. “프랑스제 잠수함”이 아니라 “그리스가 스스로 건조·정비하는 잠수함 생태계”를 만들어 주겠다는 구상이 핵심 메시지다.
그리스는 그동안 TKMS의 209·214급을 통해 독일 잠수함 기술을 경험했지만, 높은 비용과 납기 지연, 정치적 변수 등으로 불만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방산사들이 공급 지연과 가격 인상 문제에 시달리자, 그리스 언론과 군사 매체들은 “유럽만 믿기 어렵다”며 한국산 잠수함·무인기 등 대안을 집중 조명하기 시작했다.
한화오션이 캐나다 3,000톤급 잠수함 사업에서 나발 그룹·사브·나반티아 등을 제치고 TKMS와 최종 2파전을 벌이고 있는 점은, 한국 설계가 이미 ‘유럽 기준’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배경 속에서 그리스 내부에서는 독일식 운용 경험을 유지하면서도 공급망과 정치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해 한국과 손잡는 시나리오가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잠수함 사업은 단순히 네 척의 수주 여부를 넘어, 유럽 재군비 시장의 향후 방향을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로 평가된다. EU는 2030년까지 최대 8,000억 유로를 투입하는 재무장 계획을 추진 중이며, 나토 남동부 최전선인 그리스는 해군·공군 현대화의 핵심 수혜국으로 꼽힌다.
그리스에서 누가 승리하느냐에 따라, 향후 크로아티아·루마니아·불가리아 등 인근국 해군 사업과 광범위한 나토 수중전력 수요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가능성이 크다. 현지 언론이 “TKMS, 사브, 한화오션, 핀칸티에리까지 뒤엉킨 사상 초유의 수주전”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결국 승부는 성능·가격·기술 이전·산업 참여·정치적 신뢰를 누가 가장 설득력 있게 패키지로 엮어 내느냐에 달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