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방산 시장에 “미국과 중국 무기 다 제치고” 꽉 채웠다는 ‘K-방산’
||2026.04.27
||2026.04.27
2월 리야드 상공에 한국 공군 블랙이글스의 T-50B가 새긴 태극 문양은 그 자체로 중동 바이어들의 시선을 하늘로 끌어올린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8~12일 열린 ‘WDS 2026’ 현장에서 한국은 방산 대기업·중소기업 30여 곳이 대형 통합관을 꾸리고 K9 자주포, 천궁-Ⅱ, FA-50, 잠수함 모형까지 총출동시키며 사실상 전시장의 한 축을 점령했다. 같은 자리에서 중국은 2024년과 달리 에어쇼를 포기하고, 지상 전시 위주로만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그쳤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중동 시장에서 중국이 한국·터키에 도전을 받고 있다”고 평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전시회에 중국은 J-10CE·J-31 계열 모형과 최신 J-25A 홍보물을 내걸었지만, 2년 전처럼 J-10의 공중 시범비행은 하지 않았다. 반면 한국은 블랙이글스의 고난도 곡예비행으로 T-50 계열 기체의 기동 성능과 신뢰성을 몸으로 보여줬고, 터키도 KAAN(전 TF-X) 모형과 드론·미사일 패키지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한국이 KF-21, 터키가 KAAN을 내세우면서 “미국·러시아 외에도 스텔스급 전투기를 자체 개발하는 제3 세력”임을 과시하자, 중국의 전투기 라인업은 상대적으로 새로움과 화제성이 떨어졌다는 평가다. 중국 업체 관계자조차 “파키스탄과 공동 개발한 JF-17 수출 협상에 기대를 거는 수준”이라고 말할 만큼, 중동 공군 시장에서의 체감 경쟁력은 예전만 못한 분위기다.
중국 전투기가 중동에서 고전하는 이유는 단순히 스펙 문제가 아니라 정치·외교 변수에서 밀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미국·영국, 프랑스를 축으로 한 서방과 안보 협력을 강화하려는 사우디·UAE 입장에선, F-35·유러파이터·라팔·KF-21 같은 ‘동맹권 플랫폼’을 선택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
RAND와 각국 연구소 전문가들은 “전투기 사업은 수십 년짜리 동맹 계약이기 때문에, 가격이 조금 싸다고 해서 중국산을 택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사우디가 F-15·KF-21 도입 가능성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나왔을 때, 미국 록히드·보잉은 즉각 실물 크기 모형을 들고 리야드에 등장해 자국 기종을 과시했고, 한국도 KF-21 수출 협상에서 기술 이전·현지 생산·MRO 패키지를 두고 중동과 치열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중국이 상대적으로 자신감을 보이는 분야는 윙룽·CH(레인보우) 계열로 대표되는 중·대형 군용 드론이다. 40시간급 체공 능력을 가진 윙룽-X, 저렴한 무장형 CH-4/5는 이미 사우디·UAE에 다수 공급되며 ‘미국제 리퍼가 비싸고 까다로울 때 선택하는 현실 대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RAND의 티모시 히스 연구원도 “서방 제약이 상대적으로 덜한 드론 시장에서 중국이 훨씬 더 좋은 기회를 가진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천궁-Ⅱ로 방공 신뢰를 얻은 한국과, 바이락타르 TB2·악인치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터키가 중·대형 무인기와 드론 대응체계까지 패키지로 제안하기 시작하면서, 이 분야에서도 중국의 독점 구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중동이 ‘드론 전쟁의 실험장’으로 변하는 만큼, 누가 더 완성도 높은 드론–방공 통합 솔루션을 내놓느냐가 관건이 되고 있다.
WDS 2026에서 한국이 보여준 건 단순히 무기 전시가 아니라 ‘패키지형 방산 진출 모델’에 가깝다. 한화·LIG넥스원·KAI·현대중공업 등 빅4뿐 아니라, 탐지·통신·전력지원·차량 등 중소 협력사까지 30여 개사가 통합관을 꾸려 K9, 천무, 천궁-Ⅱ, FA-50, KF-21, 잠수함, 무인차량·드론 솔루션까지 한 번에 보여줬다.
사우디가 ‘비전 2030’ 아래 방산 지출의 50%를 자국에서 생산·정비하겠다는 목표를 내놓은 상황에서, 한국 업체들은 “현지 공장·정비센터·부품 클러스터를 함께 만들어 주는 파트너”를 자처하며, 기술 이전·현지 생산·교육훈련을 포함한 종합 패키지를 제안하고 있다. 이 점이 기술 이전에 소극적인 미국, 고가·지연 이슈를 안고 있는 유럽, 정치적 리스크가 큰 중국과의 가장 큰 차별점으로 꼽힌다.
SIPRI·한겨레 분석에 따르면 한국은 최근 5년 사이 글로벌 무기 수출 점유율 6% 안팎을 기록하며 세계 4위권으로 급부상했다. 유럽 재군비와 중동의 오일머니 수요를 동시에 잡은 결과로, K-방산은 미국·러시아·프랑스를 뒤쫓으며 ‘중견 강국형 공급자’ 포지션을 굳히고 있다.
특히 중동에서는 K9 자주포·천무 다연장·천궁-Ⅱ·FA-50·잠수함·KF-21이 하나의 카탈로그처럼 움직이며, 사우디·UAE·카타르·이라크·이집트 등을 잠재 고객으로 두고 수주전을 벌이고 있다. RAND와 중동 방산 분석가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정치·가격·기술 이전을 모두 감안했을 때, 한국·터키 같은 국가가 오일머니의 새로운 선택지가 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미국과 중국이 각각 안보 동맹과 정치 리스크로 발이 묶인 사이, ‘적당히 서방, 적당히 유연한’ 한국식 모델이 중동 방산 시장의 빈 공간을 채우고 있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