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타포스가 뭐냐며 무시했다가” 반나절 만에 역사에서 지워진 ‘이 나라’
||2026.04.28
||2026.04.28
2018년 2월 7일 밤, 시리아 데이르에즈조르 인근 하샴·코노코 가스전 일대에서 약 500명 규모의 시리아 친정부군·러시아 민간군사기업(PMC) 바그너 인원들이 미군과 SDF가 점거 중인 기지로 진격했다. 당시 이 지역은 IS 격퇴 이후에도 시리아 정부군·쿠르드 SDF·미군이 통제권을 두고 다투던 전략 거점이었고, 가스전 자체가 연 수억~10억 달러대 수익을 내는 핵심 자산으로 알려져 있었다.
바그너 측은 아사드 정권과 “시설 탈환 시 생산 수익 일부를 배분받는 계약”을 맺고 있었고, 이를 노린 공격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반면 미군은 약 40명 규모의 특수부대·포병·공군 통제요원이 SDF와 함께 기지를 방어하는 상황이었다.
교전 직전 미군 지휘부는 러시아와의 ‘충돌 방지 핫라인’으로 연락해, 접근 중인 병력이 러시아 정규군인지 여부를 거듭 확인했다. 러시아 측은 “우리 병력이 아니다”라고 답했고, 이로써 미국 측은 ‘러시아군과의 직접 충돌’이 아닌 불법 무장세력 공격으로 판단, 전력 투입에 제약이 사라졌다.
이후 수시간에 걸쳐 미 해병대 포병과 함께 F-22·F-15E, AH-64 아파치, AC-130 건십, B-52 폭격기, MQ-9 리퍼 드론 등 미 공군·육군 전력이 차례로 투입되며 공격 세력을 집중 타격했다. 제임스 매티스 당시 국방장관은 상원 청문회에서 “러시아 고위 지휘부가 ‘우리 병력이 아니다’라고 확인하자, 합참의장에게 ‘그 세력은 전멸(annihilated)되어야 한다’고 지시했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고 증언했다.
전투는 약 3~4시간 동안 이어졌고, 미군 측은 단 한 명의 전사 없이 공격을 저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미군과 일부 서방 매체는 당시 바그너와 시리아 친정부 병력의 사상자가 수백 명 규모에 달했다고 보도했고, CIA 국장(당시) 마이크 폼페오는 “몇 백 명의 러시아인을 사살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러시아 탐사보도 그룹과 일부 바그너 간부들은 “수십 명 수준(20~30명) 사망에 그쳤으며, 수백 명 전사설은 과장”이라고 주장해 정확한 숫자는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다만 시리아 정부군·용병·부대 장비(탱크·자주포·트럭 등)에 상당한 피해가 난 것은 미군·러시아 양측 자료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된다.
당시 현장에는 델타포스·레인저·공군 전투통제사(CCT) 등 미 특수작전 인원이 배치돼 있었고, 이들이 지상에서 항공화력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았다. 미군은 접근해 오는 병력을 장거리 포병과 공중 타격으로 먼저 분산시키고, T-72 전차·자주포·보병을 우선 순위 표적으로 지정해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야간에 적외선·열상 장비로 적 위치를 포착하고, 리퍼 드론과 AC-130 건십에서 실시간 영상을 받아 지상·공중 화력을 연동한 ‘네트워크 전투’가 전개됐다는 것이 당시 미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특수부대 병사들은 이를 “내가 서 있던 위치에서 하늘과 땅이 동시에 적을 갈아버리는 죽음의 회전목마 같았다”고 회고했다.
이 전투는 군사적 결과뿐 아니라 정치적 파장도 컸다. 공격에 나선 바그너 측은 러시아 공군의 지원과 방공망 보호를 기대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러시아 정규군은 미군과의 직접 충돌을 피하기 위해 사실상 개입을 포기했다. 이후 바그너 내부와 러시아 내에서는 “국가가 우리를 버렸다”는 불만이 쌓였고, 이는 2023년 프리고진의 반란과 모스크바 진격 시도에 영향을 준 요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러시아 정부는 사건 직후 “자국 군인 피해는 없다”고 부인하며 PMC 사망자에 대해서도 구체적 언급을 피했고, 이는 ‘부인 가능한 민간군사기업’에 의존하는 푸틴 체제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카샴(코노코 가스전) 전투는 냉전 종식 이후 미군과 러시아 국적 전투원이 같은 전장에서 정면으로 충돌한 첫 사례로 기록된다. 미국은 “러시아 정규군이 아닌 비정규 세력에 대한 자위권 행사”라고 강조했고, 러시아도 ‘자국 군인 전투 참여’를 부인함으로써 양국 간 확전을 피했다.
하지만 미국 전·현직 고위 관계자들은 “러시아가 만약 이 공격을 정규군 작전으로 인정했다면, 양국 간 군사적 긴장은 훨씬 더 위험한 수준으로 치달았을 것”이라고 회고한다. 이 때문에 카샴 전투는 “핵 보유국 간 대리전을 넘어서기 직전에서 멈춘 사건”이자, PMC를 통한 우회 충돌이 가진 위험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카샴 가스전에서의 교전은 바그너가 자칭 “세계 최강 용병부대”라는 이미지를 내세웠지만, 정규군 수준의 지휘·통신·합동화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특수전 환경에서 얼마나 취약한지를 드러냈다. 반대로 미군 특수부대는 40명 안팎의 병력으로도 공군·포병·드론·정보자산을 유기적으로 묶어 훨씬 큰 적을 격퇴할 수 있다는 ‘미래형 합동전’의 교과서 같은 사례를 만들어 냈다.
“델타포스가 뭐냐”며 과소평가했던 쪽과, 이름조차 공식적으로 내세우지 않는 쪽의 대비가 극명하게 드러난 순간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이 사건 이후 러시아는 PMC 운용 방식을 재조정하고, 미국은 특수부대와 공중전력의 연계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전 개념을 다듬었다는 점에서, 카샴의 4시간은 지금도 군사전략 교재에서 반복해서 인용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