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차 부셔져도 상관없다” 전쟁터 한복판에서도 수리 가능한 ‘K-기술’
||2026.05.01
||2026.05.01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4년 10월 특허청에 ‘조립식 정비고’ 특허를 출원했고, 올해 초 관련 내용이 공개됐다. 명세서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전차·자주포·다연장로켓이 여전히 전세를 좌우하지만, 피격이나 고장으로 “한 번 쓰고 버려지는” 비율이 높다는 문제의식이 담겼다. 기존에는 파손 장비를 후방 대형 정비창까지 수십 km 견인해야 했지만, 이 시스템은 최전방 인근에 이동형 정비고를 펼쳐 즉시 수리·복구함으로써 작전 공백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조립식 정비고의 핵심은 ‘자동 가변 접철’ 구조다. 본체는 바닥·하부 벽을 이루는 한 쌍의 하부 모듈과 지붕·상부 벽 역할을 하는 한 쌍의 상부 모듈로 구성되며, 이동 시에는 각 모듈이 직육면체 컨테이너 박스처럼 콤팩트하게 접힌다. 이 상태로 트럭·철도에 실어 전선 근처까지 이동한 뒤, 현장에서 ‘설치 모드’를 작동하면 내부 구동장치가 벽면과 지붕을 바깥으로 밀어내며 공간을 크게 확장한다. 기존 천막식 야전 정비소와 달리, 구조 자체가 강성 철제 박스에서 넓은 정비홀로 변형되는 방식이다.
전개 과정도 특허 문서에 꽤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각 모듈 내부에는 회전 운동을 직선 운동으로 바꾸는 웜 기어와, 벽을 밖으로 밀어내는 유압·공압 실린더를 포함한 제1~6 구동부가 탑재된다. 이 장치들이 작동하면 겹쳐져 있던 벽면이 슬라이드처럼 펼쳐지면서, 하부 모듈 2개가 알파벳 ‘L’자 형태로 넓게 눕는 구조가 된다. 여기에 대칭 구조의 상부 모듈 2개를 레고 블록처럼 얹어 결합하면, 중앙에 기둥이 없는 단일 정비 공간이 완성된다. 기둥이 없다는 건 K2 전차나 K9 자주포 같은 50톤급 장비도 내부에서 자유롭게 돌리고 이동할 수 있다는 의미다.
조립식 정비고는 단순히 비를 피하는 쉘터에 그치지 않는다. 특허에 따르면, 바닥에는 수십 톤 중량의 전차·자주포 차체를 들어 올려 하부를 수리할 수 있는 리프트가 포함돼 있다. 천장에는 엔진·변속기·포탑 등 무거운 파워팩을 들어 올리고 내려놓을 수 있는 호이스트(천장 크레인)가 내장되도록 설계됐다. 사실상 후방 상설 정비창에서나 볼 수 있는 핵심 설비를 전선 가까이 통째로 옮겨놓는 개념이다. 여기에 전차 출입을 위한 대형 힌지 도어, 방진·방수·차폐 구조까지 결합하면, 장기전에서도 전선 인근에서 고급 정비를 수행할 수 있는 ‘야전 MRO 기지’ 역할을 할 수 있다.
공간 확장성도 이 시스템의 강점이다. 기본적으로 정비고 전면에는 장비 출입용 도어가 달리고, 후면 벽은 필요 시 떼어낼 수 있게 설계된다. 덕분에 동일한 단위 모듈을 뒤로 계속 이어 붙이면, 다연장 로켓 ‘천무’나 긴 포신을 가진 K9 자주포, 심지어 여러 대의 장비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터널형 정비고로 길이를 늘릴 수 있다. 모듈 결합 부위에는 구조물 고정과 밀폐성을 높이는 스토퍼 장치를 두어, 야지·악천후 환경에서도 내부 작업이 가능하도록 했다. 실제 전장에서는 전차·장갑차뿐 아니라 공병·구난·보급 차량까지 다양한 플랫폼을 다뤄야 하는 만큼, 이런 확장형 설계는 수입 경쟁 제품과의 차별 포인트가 될 수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조립식 정비고는 한국군 전투 지속 능력 향상뿐 아니라, 수출용 ‘MRO 패키지 옵션’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아무리 뛰어난 전차·자주포를 팔아도 상대가 야전 정비 인프라를 못 갖추면 실제 운용률은 급격히 떨어진다. 한화는 K9·레드백·K2 같은 기갑 체계와 함께 “전방 이동 정비고+부품 패키지+정비 교육”을 묶은 현지화 솔루션을 제안할 수 있어, 독일·프랑스 등 경쟁사와 다른 방식의 종합 군수지원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전쟁터 한복판에서 “대전차 미사일에 맞아도 다시 고쳐 쓰는” 운용 개념을 팔 수 있게 되는 셈이다.
K-방산이 지금까지는 K9·K2·FA-50 같은 하드웨어로 주목받았다면, 앞으로는 이런 야전 정비·MRO 솔루션이 한국 방산 경쟁력의 새로운 축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장비 자체의 스펙 경쟁만으로는 이미 시장이 포화 상태인 반면,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누가 장비를 오래 돌릴 수 있느냐”가 승패를 가르는 요소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트랜스포머 정비고’ 특허는 한국이 “전차를 잘 만드는 나라”를 넘어 “전차를 전쟁터에서 잘 고쳐 쓰게 해주는 나라”로 변신하려는 시도의 한 단면으로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