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빼고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한국 망 사용료 비난하는 중인 나라
||2026.05.01
||2026.05.01
미 무역대표부(USTR)는 4월 27일(현지시간) 공식 X 계정을 통해 ‘미국 수출업체들이 직면한 가장 터무니없는(Craziest) 외국 무역장벽 10가지’ 시리즈를 올렸다. 첫 게시글에서 “몇몇 나라들이 미국산 수출을 막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믿기 어려울 것”이라며, 독자들에게 아래 케이스들을 보라고 유도했다.
이어 4번째 사례로 한국의 망 사용료 정책을 지목하면서 “세계 어느 나라도 인터넷 트래픽 전달에 대해 자국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ISP)에 네트워크 사용료를 부과하지 않는다. 한국을 제외하고”라고 적었다. 튀르키예의 미국산 쌀 수입 금지, 일본의 러시아산 수산물 제한, 나이지리아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금지, 호주의 스트리밍 규제 등과 함께 묶어 ‘특이한 장벽 리스트’로 소개한 것이다.
한국에서 말하는 망 사용료는 넷플릭스·유튜브 같은 콘텐츠제공사업자(CP)가 이용자에게 가는 데이터 트래픽을 ISP(SK브로드밴드·KT·LGU+ 등)의 유선·모바일망을 통해 전송할 때, 접속료와 별도로 망 이용 대가를 내라는 개념이다. 국내 통신사들은 트래픽 폭증으로 네트워크 증설 비용이 커졌는데, 대량 트래픽을 유발하는 글로벌 CP들이 사실상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실제로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는 2019년 이후 망 사용료를 둘러싸고 방송통신위원회 분쟁조정, 민·형사 소송을 벌였고, 2023년 양사가 합의·제휴를 발표하며 일단락된 상태다. 한국 통신사 입장에선 “국내 CP는 돈 내고, 해외 빅테크만 안 낼 수는 없다”는 형평성 논리가 핵심이다.
반대로 미국 빅테크와 USTR의 시각은 정반대다. 넷플릭스·구글 등은 “이용자가 이미 통신사에 월정액 인터넷 요금을 내고 있는데, CP에게 추가로 망 사용료를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이중과금”이라고 비판한다. 또 특정 서비스나 CP에만 별도의 요금을 부과하는 것은 ‘망 중립성(net neutrality)’ 원칙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고 본다.
USTR는 NTE(국가별 무역장벽) 연례 보고서에서 한국의 망 사용료 논의를 플랫폼 규제 법안, 위치데이터 해외반출 제한, 결제 인증·보안 기준과 함께 ‘서비스 분야의 비관세 장벽’으로 반복해서 명시해 왔다. 미국 IT 업계 단체 CCIA도 한국의 이른바 ‘sender-pays’ 모델이 지연(latency) 증가, 망 성능 저하, 현지 인프라 투자 위축 등 부작용을 낳는다고 USTR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USTR가 “한국만 빼고 어느 나라도 이런 사용료를 부과하지 않는다”고 못 박은 것은, 한국을 디지털 통상 규범에서 ‘이상치(outlier)’로 규정하려는 의도가 담긴 표현이다. 실제로 미국·EU에서는 기본적으로 이용자가 ISP에게 접속료를 내고, CP는 자체 CDN(콘텐츠전송망)·캐시 서버 투자 등을 통해 품질을 관리하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물론 트래픽 피어링·접속료 협상은 존재하지만, 한국처럼 법·정책 차원에서 ‘망 이용 대가’를 본격적으로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은 드물다 보니, USTR 입장에선 디지털 서비스 수출에 대한 비관세 장벽이라고 보는 것이다. 특히 이번 X 게시글과 언론 인터뷰에서는, 한국의 망 사용료 법제화 논의가 계속될 경우 통상법 301조를 활용한 보복 관세 카드까지 검토할 수 있다는 시각도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논쟁이 한·미 갈등이기 전에 이미 한국 내부에서 통신사와 인터넷 업계 사이의 격렬한 싸움이었다는 사실이다. 통신사들은 “망 투자 비용을 부담하는 쪽과 트래픽을 유발하는 쪽이 적정하게 분담해야, 국내외 사업자 간 역차별이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시민단체·스타트업·일부 학계에서는 “글로벌 사업자는 망 사용료를 피하려 한국 시장을 축소하거나, 스타트업·중소 CP들이 비용 부담 때문에 혁신 서비스 출시를 포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2021년 서울중앙지법 1심은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에 망 사용료를 아예 안 낼 수는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지만, ‘어떻게, 얼마나’ 낼지는 여전히 협상·정책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USTR의 이번 공개 비판은 망 사용료 문제가 단순 국내 규제 논쟁이 아니라, 한·미 FTA 이후 새롭게 부상한 ‘디지털 통상’ 쟁점임을 다시 확인시켰다. 특히 스트리밍·게임·클라우드 같은 디지털 서비스가 교역의 핵심 품목이 된 상황에서, 데이터 이동·망 이용 조건·콘텐츠 규제는 향후 통상 협상의 주요 전장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통신사·국내 CP의 이해와, 한·미 동맹·통상 관계, 그리고 이용자 부담·혁신 생태계 영향까지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한국식 망 사용료”라는 미국의 압박이, 결국 한국 내부 제도 설계와 디지털 산업 전략 전반을 다시 손보게 만드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