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미군 철수 위협한 걸 허세로 받아들였다가” 깜짝 놀란 나라
||2026.05.03
||2026.05.03
독일 정치권이 그동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주독미군 철수’ 위협을 외교적 압박용 허세로 치부해 온 판단이, 실제 병력 감축 명령이 떨어지면서 뼈아픈 오판으로 돌아왔다는 평가가 힘을 얻고 있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은 독일 정부가 트럼프의 거친 발언을 진지한 정책 신호가 아닌 레토릭으로만 다룬 결과, 동맹 구조를 뒤흔드는 조치가 현실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란 전쟁을 둘러싼 미·독 갈등이 그저 말싸움 수준에 그칠 것이라 본 낙관론이, 결국 주독미군 감축이라는 형태로 부메랑이 된 셈이다. 독일 내부에선 “트럼프 리스크를 끝까지 과소평가했다”는 자성론이 번지고 있다.
미 국방부는 5월 1일(현지 시각) 독일에 주둔 중인 미군 병력 약 5,000명을 향후 6~12개월 동안 미국 본토 및 다른 지역으로 재배치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현재 독일에는 약 3만6,000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어, 감축이 완료되면 병력 규모는 3만1,000명 수준으로 줄어든다.
독일은 7만~8만 명에 이르는 유럽 주둔 미군의 지휘·보급 허브라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독일 국경 안보를 넘어서 유럽 동부 전선과 러시아 억제 태세 전체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이 “전 세계 미군 재배치 검토의 일환”이라고 설명했지만, 시기와 배경을 감안하면 독일에 대한 정치적 경고 성격이 짙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번 감축 결정의 방아쇠는 이란 전쟁을 둘러싼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의 공개 발언이었다는 게 미·독 언론의 공통된 해석이다. 메르츠 총리는 최근 자국 학생들과의 간담회에서 미국의 대이란 전쟁 전략을 두고 “전략이 없다”, “이란 협상가들에게 굴욕을 당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부총리 겸 재무장관인 라르스 클링바일도 “트럼프 대통령의 훈수는 필요 없다, 본인이 만든 난장판부터 정리하라”고 가세하며 수위를 끌어올렸다. 트럼프는 SNS와 연설에서 “메르츠는 이란이 핵무기를 가져도 되는 것처럼 행동한다”며 날을 세운 뒤, 불과 며칠 만에 “주독미군 감축을 검토 중”이라고 밝히고 실제 명령으로 이어갔다.
독일은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상황을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보지 않았다. 메르츠 총리는 3월 워싱턴 방문 당시 트럼프로부터 “독일 내 미군을 계속 주둔시키겠다”는 약속을 받았다며, 국내 비판 여론을 상대로 자신감을 드러냈다. 베를린 외교가도 트럼프의 미군 철수 언급을 협상용 레버리지 정도로 해석하며, 공개 충돌을 피하는 선에서 관리하면 된다는 인식이 강했다.
다만 독일이 이란 전쟁에 직접 전투부대 투입을 거부하고, 호르무즈 해협 파견도 유엔·EU 승인과 영구 휴전을 조건으로 제한적 기뢰 제거 지원만 가능하다고 선을 그은 것이 트럼프의 심기를 건드린 것으로 전해진다. 결과적으로 독일의 신중론이 미국 대통령에게는 ‘비협조·무임승차’로 읽힌 셈이다.
독일 정부는 표면적으로는 최대한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독일과 유럽에서의 미군 병력 조정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며 “이제 유럽인들이 우리 안보에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독일은 미국 의존도를 줄이고 유럽 중심 안보 체계를 강화하겠다는 첫 군사전략을 최근 공식 발표했다. 향후 10년간 단계적으로 군비를 확대해 ‘유럽 내 최강 재래식 군대’로 독일군을 육성하고, 나토 내에서 유럽 대륙 방어의 중심 역할을 맡겠다는 계획이다. 프랑스·영국과의 3각 협력, EU 차원의 방위산업 투자 확대도 ‘포스트 미국’ 시대를 대비한 플랜 B로 병행되고 있다.
트럼프의 주독미군 감축 카드에 대해, 미국 안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공화당 소속 로저 위커 상원 군사위원장과 마이크 로저스 하원 군사위원장은 공동 성명을 통해 “유럽에서 미군 전방 배치를 서둘러 축소하는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올해 미 의회가 통과시킨 국방수권법에는 유럽 주둔 미군을 7만1,000명 이하로 줄이는 데 필요한 예산 확보를 어렵게 만드는 조항까지 포함돼 있어, 실제 감축 과정에서 의회의 견제와 보완 요구가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과거 트럼프 1기 때 독일 주둔 미군 9,500명 감축 계획이 의회의 반발과 예산 미승인으로 상당 부분 무산됐던 전례가 다시 거론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이번 병력 감축이 독일 안보를 단번에 무너뜨리는 수준은 아니라고 보면서도, 트럼프식 ‘즉흥 결정’이 유럽 외교의 불확실성을 구조적으로 키우고 있다고 분석한다.
독일 관료들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언제든 결정을 번복할 수 있다는 점이 유일한 변수”라고 말하면서도, 이 경험이 유럽 내에서 ‘미국에만 기대지 않는 안보 구조’를 고민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라고 입을 모은다. 더이상 워싱턴의 안전보장을 전제로 외교·국방 전략을 짤 수 없게 된 순간, 독일이 뒤늦게 “허세인 줄 알았던 경고를 진작에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어야 했다”는 반성을 시작했다는 평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