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한국이 펼친 작전이라며 주장한” 충격의 집단 탈북 사건 정체
||2026.05.04
||2026.05.04
2016년 4월 5일, 중국 저장성 닝보시의 북한 식당 ‘류경식당’에서 일하던 남성 지배인 1명과 여성 종업원 12명이 한꺼번에 자취를 감췄다. 이들은 북한 당국이 운영하는 해외 외화벌이 식당 직원으로, 실질적으로는 해외 파견 노동자이자 체제 선전 도구 역할을 맡고 있었다.
한국 정부는 4월 8일 긴급 브리핑을 열어 이들이 제3국을 거쳐 입국했으며, “김정은 정권에 염증을 느껴 집단 탈북했다”고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는 사건 발생 시점이 4·13 총선을 닷새 앞둔 때였다는 점에서 “북한 체제의 취약성과 대북 제재 효과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적극 강조했다.
한국 통일부와 국정원 설명에 따르면, 류경식당 지배인 허강일은 북한 정권·당국 통제에 회의를 느끼고 탈북을 결심한 뒤, 종업원들과 한 명씩 개별 면담을 하며 의사를 확인했다. 2016년 4월 초 북한 보위성 요원이 본국으로 교체 발령되면서 감시망이 일시적으로 느슨해지자, 이를 ‘기회’로 보고 종업원 12명과 함께 식당을 빠져나가 상하이로 이동했다는 것이 당시 정부 발표의 골자다.
이들은 중국 내 경유지에서 한국 정보 요원들과 접촉해 동남아 제3국으로 이동한 뒤, 4월 7일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에 입국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합동조사 과정에서 13명 모두 자유의사를 재확인했고, 이후 4개월간 보호센터에서 생활한 뒤 한국 사회 각지에 정착했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사건 직후부터 “한국이 우리 종업원들을 유인·납치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후 국내외 일부 인권·법률 단체, 특히 민변과 일부 언론은 ‘기획 탈북 의혹’을 제기했다.
연합뉴스와 한겨레 보도, 그리고 나중에 공개된 국정원 비밀 문건 등을 종합하면, 초기 상황을 국방부 정보사령부가 주도했고 국정원은 이후 후속 관리에 관여한 정황이 있다고 알려졌다. 또 2018년에는 류경식당 여종업원 중 일부가 언론에 “한국행이 자신이 원한 선택이 아니었고, 지배인이 ‘어딘가로 간다’고만 말해 따라왔다”는 취지의 증언을 하면서, ‘13명 전원이 완전한 자발적 탈북이었는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논란은 국내를 넘어 국제무대로 번졌다. 2017년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는 북한 해외식당 여종업원 집단 탈출 사건을 ‘납치·강제실종 의혹 사례’ 가운데 하나로 보고서에 포함시켰고, 2017년·2018년 유엔 총회 제3위원회에서 이를 직접 언급했다.
북한은 유엔에 “종업원 가족과本人을 직접 만나 조사하라”며 강제송환을 요구했고, 한국 정부는 당사자 신변 보호와 자유의사 존중을 이유로 이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한편 대법원은 일부 소송에서 “종업원들 자유 의사가 확인됐다”고 판단했지만, 국제사회와 일부 인권 단체는 여전히 “정치·정보전의 도구가 돼선 안 된다”며 추가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연합뉴스 등 보도에 따르면, 류경식당 출신 13명은 입국 후 4개월가량의 합동조사를 마친 뒤, 예외적으로 하나원 12주 교육을 생략하고 곧바로 사회 각지에 분산 정착했다. 일부는 대학에 진학하거나 직장을 잡고, 다른 일부는 신분 노출을 우려해 이름·외모를 바꾸며 생활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과 일부 단체가 제기한 ‘강제 송환’ 요구에 대해, 한국 정부는 “본인들이 북한으로 돌아가겠다고 요청한 적이 없고, 현재도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생활 중”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설령 기획 개입이 있었다 해도, 지금 당사자들을 다시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더 큰 인권 침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북한은 지금도 류경식당 사건을 “한국 국가정보원과 군 정보사가 공모해 벌인 대남 심리전·납치 공작”이라고 주장하며, 국가 선전매체와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인권 이중잣대’를 비난하는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 정보기관이 초기 단계에서 지배인과 접촉해 탈출 경로를 마련한 정황은 여러 보도를 통해 확인됐고, 종업원 개개인의 자유 의사가 어느 정도까지 충분히 확인·존중됐는지는 지금도 논쟁거리다.
다만, 북한 체제의 구조적 억압·해외 식당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가 탈출 동기를 키운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점에서, 이 사건은 한쪽의 ‘완전한 작전’이라기보다, 북한이 두려워하는 내부 취약성과 남북 정보전이 교차한 상징적 사건으로 보는 시각이 설득력을 얻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