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가 한 명도 없었다” 한국에선 다시 나오기 힘들다는 ‘1위 대테러부대’ 정체
||2026.05.04
||2026.05.04
1977년 루프트한자 181편 납치 사건에서 독일 연방경찰 특수부대 GSG-9은 모가디슈 공항에 세워진 여객기에 섬광탄과 돌입을 동원해 5분 만에 승객 86명을 전원 구출하는 ‘사망자 0’ 작전을 성공시켰다.
탑승객과 승무원 중 사망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은 이 사례는, 현대 대테러 작전 교과서에 남은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당시 이 장면을 지켜본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에도 저런 부대가 필요하다”고 지시했고, 이것이 한국 최초 대테러 전담 부대인 제606특공부대 탄생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606특공부대는 1978년 6월 1일, 특전사 예하 제66특전대대를 모체로 분리·개편되며 공식 창설됐다. 편제상으로는 특전사 소속이지만 작전·지휘 계선은 대통령경호실에 예속되는 독특한 구조였고, 부대명 ‘606’ 자체가 군 내부에서도 극비에 부쳐졌다.
창설 요원은 전원 특전사 출신으로, 각 여단에서 무술 고단자·사격 특등사수·체력 특급자만 선발해 장교 2명, 부사관 18명을 중심으로 정예화했다. 이들은 공군항공의료원에서 정밀 신체검사와 신원조회까지 통과해야 전입이 가능했을 정도로 선발 기준이 까다로웠다.
606의 핵심 임무는 GSG-9를 모델로 한 항공기 대테러였다. 김포공항 인근에 막사와 종합훈련장을 두고, 대한항공에서 제공한 퇴역 여객기를 훈련용 기체로 삼아 실제 항공기 구조와 동일한 환경에서 돌입 훈련을 반복했다.
야간에 비행기를 ‘납치기’로 설정한 뒤, 섬광탄·최루탄·실탄 사격을 혼합해 객실 문 돌파 → 조준사격 → 인질 엄호까지 전 과정을 실전처럼 연습했다는 증언이 남아 있다. 고공 강하(HALO), SCUBA 수중침투 등 특수침투 기술과 함께 CQB(근접전투), 저격, 인질제압술을 집중 연마해 “한국판 GSG-9”로 키우는 것이 목표였다.
606부대는 창설부터 해체까지 사실상 언론 노출이 전무했다. 박정희 피격 이후 청와대 경호실 체계가 크게 흔들리는 와중에도, 606은 대통령경호실 지휘 아래 청와대 인근·김포공항 일대에서 은밀히 대테러 대비태세를 유지했다.
1987년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당시에는 북파 보복작전이나 항공기 납치 시나리오에 대한 검토가 내부에서 오갔지만, 외교·정치적 부담으로 실제 투입까지 이어지진 못했다는 회고도 있다. 신동아 인터뷰에 따르면, 606 출신 장교들은 “우리가 존재했다는 것 자체를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했다”고 회상할 정도로 부대 신상은 2급 군사기밀로 관리됐다.
1980년대 들어 국가대테러지침 제정과 함께 특전사 예하 707특수임무대대(현 707특수임무단)가 공식 대테러 주력 부대로 부상하면서, 606의 임무와 노하우 상당 부분이 707로 이전됐다. 707은 아시안게임·올림픽 대비, 주한미군·해외 특수부대와의 합동훈련 등을 통해 공개 활동과 실전 경험을 늘리며 ‘국가대표 대테러부대’ 이미지를 굳혔다. 그
러나 606 출신 이봉상 예비역 소령 등은 “707이 대테러 임무를 수행하긴 하지만, 항공기 인질 구출 같은 초정밀 대테러 전문성은 606이 더 깊었다”며, 606 해체를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라고 평가한다. 단일 임무(항공기 테러)에 전력 집중하고, 인원도 소수 정예로 유지한 구조가 오늘날처럼 다양한 임무를 떠안은 707 체계에선 재현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606의 종말은 군사적 필요보다 정치적 변화와 더 밀접했다. 10·26 이후 박정희 체제 청산과 문민정부 과정에서, 대통령경호실 직할·박정희 지시로 만들어진 606은 ‘유산’이자 잠재적 정치 부담으로 인식됐다. 정식 편제와 예산이 특전사·경호실 사이에 걸쳐 있는 애매한 구조도, 제도권 안에서 장기 존속하기에 불리한 요소였다는 분석이 많다.
결국 1990년대 초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부대는 조용히 해체됐고, 훈련기록·편제자료 상당 부분이 폐기되면서 구체적인 활동 내역은 군 내부 증언과 일부 증언 기사로만 전해지는 ‘전설의 부대’가 됐다.
오늘날 한국의 공식 대테러 주력은 707특수임무단·해군 UDT·경찰특공대·해경 특공대 등 여러 조직이 나눠 맡고 있다. 하지만 항공기 인질 구출 작전에 특화된, 극소수 정예 인원만으로 구성된 비공개 대테러 전담 조직은 606 해체 이후 다시 만들어지지 않았다.
606 출신들은 “GSG-9처럼 인질 사망자 0을 목표로 특화된 대테러부대는 정치·여론 리스크, 예산 구조 등을 감안하면 한국에서 다시 만들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럼에도 606이 개척한 항공기 돌입술·고공·해상 침투 전술은 707과 다른 특수부대들의 교범과 훈련에 녹아, 지금도 한국의 대테러 역량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떠받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