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도 아니다” 한국의 기업인데 세계 각지에서 무기를 사고 싶어서 줄 선 이유
||2026.05.06
||2026.05.06
2000년대 초 한국 육군이 쓰던 구룡 다연장로켓은 사거리 36km, 재장전 30분 수준에 그쳐 현대전엔 한계가 뚜렷했다. 국방부는 미국제 M270 MLRS나 하이마스(HIMARS) 도입을 검토했지만, 높은 도입·운용비와 한국 지형에 맞지 않는 운용 개념 때문에 결정을 미루고 있었다.
이때 한화 내부에서 “국가가 결정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먼저 만들어 제안하자”는 판단이 나왔다. 김승연 회장이 “실패해도 기술은 남는다”며 지원을 약속하자, 한화는 국방부 예산 없이 자체 500억 원을 투입해 천무 개발에 착수했다. 군이 ‘살지 말지’조차 정하지 않은 무기를 기업이 먼저 만든, 보기 드문 구조였다.
한화는 기존 구룡 발사대를 버리고, 자사 트럭 섀시 위에 다구경 발사 모듈을 올리는 완전 신형 체계를 설계했다. 개발 과정에서 시험탄이 추락하면 잔해를 회수해 다시 분해·분석하는 식으로 데이터를 쌓았고, 4년여 연구 끝에 2013년 시제품이 나왔다.
2014년 국군 시험평가를 통과한 뒤, 2015년부터 천무 양산이 공식 결정되면서 “국방부 예산 없이 시작된 민간 주도 개발이 실제 전력화까지 이어진 첫 사례”로 꼽혔다. 초기 개발비 500억 원은 한화가 온전히 떠안았지만, 이후 군 도입과 수출이 이어지면서 이 투자금은 ‘최고의 잭팟’이 됐다.
천무 발사차량 1대는 포드 두 개에 227mm급 유도 로켓 12발을 탑재해, 1분 안에 전탄 발사가 가능하다. 기본 유도탄(CGR-080)은 사거리 80km, 최신 전술탄도탄(CTM-290)은 최대 290km까지 타격할 수 있어, 하이마스(6발·사거리 80~300km)와 비교해 “가격은 절반, 단발 화력은 2배” 수준으로 평가된다.
GPS·관성유도와 개량된 자탄·관통탄 조합으로 원형공산오차(CEP) 수 m대 정밀타격이 가능하고, 로켓 포드를 통째로 교체하는 모듈식 구조 덕분에 재장전 시간은 5분 내로 줄였다. 한 발사대에서 130mm 비유도탄부터 290km급 탄도탄까지 운용할 수 있는 다구경·다탄종 설계는, “한 대를 여러 역할에 돌릴 수 있다”는 점에서 해외 군의 ‘가성비 계산기’를 자극했다.
천무는 2015년 한국군 배치 이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동 분쟁을 거치며 실전성이 입증되자 해외 시장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2022년 러시아 침공 직후 하이마스 공급이 부족해지자 폴란드는 한국산 K2 전차·K9 자주포와 함께 천무를 패키지로 도입하기로 결정, 2022년 11월 1차 이행계약(약 5조 357억 원), 2024년 2차 계약(약 2조 2천억 원)에 이어 2025년 12월 29일 3차 계약(약 5조 8천억 원)을 체결하며 누적 13조 원 안팎 규모의 도입을 확정했다. 한화는 폴란드 WB그룹과 합작사 ‘한화‑WB 어드밴스드 시스템’을 설립해 현지에서 천무 유도탄을 생산하기로 하면서, 단순 수출을 넘어 유럽 공급망의 한 축으로 들어갔다.
유럽보다 먼저 천무에 ‘흑표’를 준 건 중동이었다. UAE는 2017년 천무 1개 포대(발사차량·탄약 포함)를 약 1조 원 규모로 도입한 뒤, 2020년 추가 물량을 발주하며 사막 환경에 대한 높은 적응성을 확인했다. 고온·모래바람 속에서 운용해도 고장이 적고, 포드 교체식 구조 덕분에 원거리 작전 후 빠르게 탄을 갈아 끼우고 이동하는 ‘쏘고 튀는’ 전술에 잘 맞았기 때문이다.
이후 사우디아라비아가 하이마스 대신 천무를 택해 2020년대 초부터 수차례 대형 계약(개별 계약은 언론마다 규모 차이가 있지만 누적 수조 원대 규모)을 맺으면서, 중동 시장에서 “HIMARS보다 화력·가격·납기에서 우수하다”는 평가가 굳어졌다. 그 결과, 말레이시아·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들도 천무 도입·MOU 협상을 진행하며 “다음 고객”으로 거론되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한국 무기 좀 팔아달라”며 한화 앞에 줄이 선 이유는 몇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민간 기업이 국방부보다 한발 앞서 위험을 감수하며 독자 개발에 나선 덕분에, 전쟁이 터졌을 때 이미 완성된 제품+증산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다.
둘째, K2·K9·천무·레드백 보병전투차까지 연계된 포병·기계화 전력 패키지를 짧은 납기 안에 공급할 수 있어, “지금 당장 쓸 전력”을 찾는 국가들에 최적의 옵션이 됐다.
셋째, 대통령 특사·장관급이 직접 나서는 정상 외교와 한화의 현지 생산·기술이전 제안이 결합되면서, “정치·군사·산업 협력”을 한 번에 묶을 수 있는 파트너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개발비 500억 원을 스스로 태우겠다고 결심했던 그 순간이, 지금 전 세계가 이 기업을 찾아오는 출발점이 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