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도 아닌 “외국인 죽음을 애도하게 위해” 한국 최고의 전투기 6대 띄운 이유
||2026.05.06
||2026.05.06
롯 아사나판은 원래 태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교사였다. 1950년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고 한국이 공산 침략으로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교단을 내려놓고 파병을 자원했다.
태국 파병군 의무대 소속으로 배치된 그는 1952년 11월부터 1953년 10월까지 유엔군 지휘 아래 간호 분대장 겸 부사관으로 복무하며, 포화 속에서 다친 장병들을 들것에 실어 나르고 치료를 도왔다. 당시 태국군은 기동성과 용맹함을 상징하는 ‘리틀 타이거’ 부대로 불리며, 한국군·유엔군과 함께 주요 전선에서 전투·의무 지원 임무를 수행했다.
아사나판은 헌신적인 공로를 인정받아 태국 정부로부터 승전·공훈을 상징하는 훈장(빅토리 메달)을 받았다. 전우들은 그를 “가장 먼저 달려가 부상병을 부축하던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1922년 8월 14일생인 그는 평생 전쟁의 기억을 안고 살다가 2023년 6월 14일, 100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생전 그는 “내 몸은 태국에서 태어났지만, 영혼은 한국 전장에서 남았다”며 “전우들이 잠든 한국 땅에 함께 묻히고 싶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고, 유족들은 이 유언을 지키기 위해 한국 정부에 유엔기념공원 안장을 정식 신청했다.
국가보훈부와 유엔기념공원위원회는 유가족의 뜻을 받아들였고, 2024년 11월 8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유해 봉환식이 열렸다. 당시 보훈부는 “여기서부터는 대한민국이 모시겠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관을 태극기·태국 국기와 함께 예우 속에 영접했다.
나흘 뒤인 11월 11일,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서 안장식이 거행됐고, 그는 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역에 묻힌 참전용사가 됐다. 이로써 유엔기념공원에는 14개국 출신 2,330여 명의 유엔군이 잠들게 되었고, 아사나판은 사후 안장된 28번째 참전용사로 기록됐다.
영결식이 열린 11월 11일 오전 11시, 부산 전역에는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을 알리는 묵념 사이렌이 울렸고, 조포 21발이 발사된 뒤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추모 비행을 펼쳤다. T‑50B 고등훈련기로 구성된 블랙이글스 6대는 유엔기념공원 상공에서 편대 기동과 화살표(Arrow) 대형을 선보이며 하늘 위 경례를 올렸다.
블랙이글스의 추모 비행은 통상 순직 조종사나 국가장에 준하는 최고 수준의 군사 예우에 해당해, 외국인 개인 참전용사를 위해 이 전력을 투입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한국이 태국 참전용사 한 명을 ‘우리와 함께 나라를 지킨 영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안장식에는 딸·손녀 등 유족과 타니 쌩랏 주한태국대사,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 박형준 부산시장, 유엔 참전용사와 후손, 시민·학생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강정애 장관은 추모사에서 “자유대한민국을 지켜준 용사님이 이 땅에서 영원히 안식하기를 바란다”며 “태국 청년의 숭고한 희생과 인류애를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밝혔다.
박형준 시장은 캐나다 참전용사가 남긴 “매년 11월 11일, 1분간 부산을 향해 고개 숙여 달라”는 말을 인용하며, “부산 시민들은 태국을 포함한 모든 유엔 참전용사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6·25 때 태국은 약 1만1,000명의 병력을 파병해 미·영·터키 등에 이어 6번째로 많은 지상군을 보냈고, 그 중 130여 명이 전사했다. 롯 아사나판의 유해가 부산 땅에 안장되고, 그의 마지막 길을 위해 한국 공군의 특수비행단 6대가 하늘을 수놓은 장면은, “국적은 달라도, 자유를 위해 흘린 피는 같은 색”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남았다.
한국 정부와 부산시는 유엔기념공원을 찾는 학생·관광객을 위해 그의 이야기를 전하는 교육·해설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며, 이는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는다”는 약속을 다음 세대에까지 이어주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