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군 부대인 줄 알았다” 한국산 함대로 꽉 채웠다는 ‘이 나라’
||2026.05.08
||2026.05.08
한화시스템은 2025년 12월, 필리핀 해군의 3,200톤급 차기 호위함 2척에 약 400억 원 규모의 전투체계와 전술데이터링크를 공급하는 5번째 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필리핀이 보유하거나 건조 중인 현대식 주력함 15척 모두가 한화시스템의 CMS를 탑재하게 됐다. 다른 회사·다른 나라 시스템이 섞여 있던 과거와 달리, 새 호위함·초계함·연안경비함까지 동일한 ‘작전 언어’를 쓰는 통합 지휘 체계를 갖춘 것이다. 필리핀 국방부 관계자들은 “운용·훈련·정비 효율이 극적으로 좋아졌다”고 평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결과는 단발성 수출이 아니라 8년에 걸친 누적 신뢰의 산물이다. 2017년 한화시스템은 필리핀 최초의 현대식 호위함 ‘호세 리잘(Jose Rizal)급’ 2척(2,600톤)에 국산 전투체계를 처음 수출하며 첫발을 내디뎠다. 2019년에는 기존 3,000톤급 호위함 3척 성능개량 사업을 수주했고, 2022년에는 3,100톤급 초계함 2척, 2023년에는 2,400톤급 원해경비함(OPV) 6척에도 차례로 CMS를 공급했다. 여기에 이번 3,200톤급 차기 호위함 2척까지 더해지며, 필리핀 해군의 현대화 사업에서 사실상 ‘전투체계 독점 공급사’ 위치를 굳힌 것이다.
전투체계(CMS)는 함정에 탑재된 레이더·소나·전자전 장비 등 센서와 함포·미사일·대잠무기를 하나로 묶어 전장 상황을 분석하고, 어떤 목표를 언제 어떻게 공격할지 결정을 내리는 두뇌 역할을 한다. 전술데이터링크(TDL)는 각 함정·해상초계기·지휘소 사이에 항적·위협·탄약 상태 같은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는 ‘신경망’이다. 한화시스템은 필리핀의 복잡한 연안·도서 지형에 맞춰, 수많은 섬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교전 시나리오를 반영해 상황 인식과 표적 분배 알고리즘을 커스터마이징했다. 그 결과, 서로 다른 기종의 배들이 한 시스템 안에서 같은 전술 그림을 보고 움직일 수 있게 됐다.
과거 필리핀 해군의 전투체계 시장은 주로 유럽·미국 업체들이 장악해 왔다. 그럼에도 필리핀이 2017년 이후 새로 짓는 배마다 한국산 CMS를 선택한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한국 해군이 구축함·호위함·고속함·잠수함에 같은 계열 전투체계를 널리 쓰면서 검증된 안정성이 있다. 둘째, 7,600여 개 섬을 가진 필리핀의 특수한 해양 환경에 맞춘 맞춤형 설계·소프트웨어 개조를 빠르게 해 준 점이 현지 운용부대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셋째, 한국산 시스템으로 통일할 경우 운영·정비 교육과 예비 부품 관리 비용이 줄어드는 ‘토털 패키지’ 이점이 커 장기 현대화 계획과도 잘 맞았다.
필리핀 정부 자료에 따르면, 이번 5차 계약 이후 필리핀 해군은 새로 도입하는 전투함·초계함의 전술 교범과 전투정보실(CIC) 운용 지침을 한국형 CMS에 맞춰 재정비하고 있다. 한국 해군이 다년간 축적한 다중 표적 교전·대잠전·연안 경계작전 개념을 일부 현지 환경에 맞게 변형해, 필리핀판 교전 규칙·전투 절차로 흡수하는 과정이다. 현지 언론은 “함대의 두뇌뿐 아니라 어떻게 싸우는 법까지 한국식으로 배우는 셈”이라며, 필리핀 해군이 한동안 한국 방산·해군과의 협력을 통해 ‘30년짜리 운용 생태계’를 함께 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화시스템은 이미 한국 해군 대부분의 수상함·잠수함에 전투체계를 공급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필리핀을 첫 대형 해외 레퍼런스로 삼았다. 필리핀에서 “한 나라 해군 주력함대의 두뇌를 통째로 한국산으로 통합한 사례”가 만들어지면서, 동남아 다른 국가와 중동·남미 해군에도 강력한 영업 카드가 생겼다. 회사는 함정 전투체계뿐 아니라, 무인수상정·무인잠수정의 통합기관제어체계(ECS)와 상태기반진단(CBMS) 같은 소프트웨어 기술까지 패키지로 제안하며, ‘철판과 포’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와 두뇌’를 파는 방산 기업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필리핀 해군이 선택한 이 한국산 두뇌가 앞으로 어떤 바다까지 퍼져나갈지, 글로벌 해군 시장의 시선이 모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