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부탁에도 거절하고 “한국 전차에만 매달려서” 결국 계약한 나라
||2026.05.09
||2026.05.09
2025년 12월 9일, 페루 리마 육군본부에서 K2 흑표 전차 54대와 K808 백호 장갑차 141대, 총 195대를 도입하는 총괄합의서가 체결됐다. 추정 계약 규모는 2조7천억~3조원대로, 중남미 방산 수출 역사상 최대 규모다. 이 사업에서 중국은 VT-4 전차를 앞세워 정부 보조금까지 붙인 저가 공세를 펼쳤지만, 페루는 결국 한국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페루의 선택에는 10년 넘게 쌓인 신뢰가 깔려 있다. 한국은 2009년 페루에 A-37B 공격기를 무상 공여했고, 이후 수익성이 낮아 유럽 업체들이 외면한 잠수함 공동개발 사업에 현대로템이 참여하는 등 ‘돈 되는 계약’만 고르지 않았다. 2024년에는 HD현대중공업이 약 6,240억 원 규모의 함정 4척 건조 계약을 따내며 해군 현대화에도 발을 들였다. 페루 육군 군수사령부 소장은 포럼 자리에서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아 K1 전차를 개발한 것처럼, 우리도 장기 연구개발과 산업협력을 통해 독자 기술을 확립하겠다”며 한국 방산 발전 모델을 페루 육군 현대화의 롤모델로 공식 언급했다.
페루는 해안 사막, 아마존 밀림, 해발 수천 미터 안데스 산맥이 공존하는 까다로운 지형을 가진 나라다. 어느 전차·장갑차든 이 세 가지 환경을 통과하지 못하면 실전에서 쓸모가 없다. K2 전차는 2025년 4월쯤 페루 현지에서 해안 평지, 밀림, 산악을 아우르는 지형 시험을 모두 통과해 ‘전천후 작전 능력’을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함께 공급되는 K808 차륜형 장갑차는 런플랫 타이어와 자동 공기압 조절 시스템을 갖춰 피탄 시에도 시속 48km 이상의 주행이 가능하고, 수상 도하 능력까지 갖춰 아마존 강 유역 작전에도 적합하다는 점이 부각됐다.
중국 VT-4는 저렴한 가격과 정부 보조금을 앞세워 중남미·동남아에서 점유율을 늘려 왔지만, 페루는 다른 계산을 했다. 폴란드 계약 기준으로 K2 전차의 수출 단가는 대당 약 4,800만 달러(약 488억 원) 수준으로, 독일 레오파르트 2A7+ 대비 30~40% 저렴하면서도 3.5세대 전차급 성능을 제공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력계·사격통제·포탑 자동장전·네트워크 전장 시스템 등 ‘한 세대 앞선’ 스펙을 감안하면, 단순 가격 비교에서만 유리한 VT-4보다 장기 운용비·성능 대비 가격 측면에서 오히려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 페루 측의 결론이었다.
이번 계약의 진짜 핵심은 양산 물량 숫자가 아니다. 현대로템은 약 2억7,000만 달러(3,800억 원가량)를 투자해 페루 현지에 전차·장갑차 조립 생산라인을 구축하기로 했다. 2026~2028년에는 K2 46대·K808 99대를 한국에서 직도입하고, 2029~2040년 사이에는 K2 104대·K808 181대를 페루 현지에서 라이선스 생산해 총 430대를 15년에 걸쳐 현지에서 만들어 운용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부품의 약 30%를 페루 현지 업체에서 조달한다는 목표까지 명시해, 일자리·기술 이전·산업 생태계 육성을 동시에 겨냥했다.
총괄합의서에는 지상장비뿐 아니라 조선·해군 분야 협력까지 묶여 있다. 한국은 페루 국영 방산기업·조선소와의 협력을 통해 함정 설계·공정·건조 노하우를 제공하고, 2039년까지 후속 함정사업에서 우선협상대상자 지위까지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상에서 해상까지 페루 군 현대화 전반의 ‘파트너’로 한국을 지정한 셈이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이번 지상 장비 수출은 중남미 지역 방산 수출 중 최대 규모이자, 양국 방산 협력을 획기적으로 격상시키는 계기”라고 평가했다.
업계에서 가장 크게 주목하는 부분은 ‘배타적 조달권’ 조항이다. 2025년 현대로템이 페루 육군 조병창(FAME)과 체결한 지상장비 협력 총괄협약에는, 향후 페루 육군이 전차·장갑차 등 지상무기를 도입할 때 현대로템을 통해서만 수입 절차를 진행한다는 내용이 명문화됐다. 이는 사실상 “페루 육군 지상무기 시장의 독점 창구”를 한국 기업에 부여한 것으로, 통상 수입국이 복수 업체 경쟁을 통해 도입 파트너를 고르는 관행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인 사례다. 기술력과 신뢰가 그 수준에 도달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조항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와 업계는 이번 페루 계약을 “폴란드에 이은 비(非)유럽·비(非)폴란드 시장 확장의 원년”으로 본다. 방산 당국은 2026년을 기점으로 페루 외에 루마니아·이라크·콜롬비아 등과의 K2·K808 추가 수출 협상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안데스 산맥과 아마존 정글을 달리는 K2·K808의 성능이 입증되면, 브라질·칠레 등 중남미 전역에서 “중국 VT-4 대신 한국 K2”를 선택하려는 움직임이 뒤따를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한국처럼 가겠다”고 말하는 나라가 늘어날수록, K-방산이 세계 4대 방산 강국 자리를 굳히는 속도도 그만큼 빨라질 것이라는 점은 이미 페루 사례가 증명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