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국 이탈리아에 빌었다” 30년 만에 외국산 독점을 깨고 개발한 ‘이 기술’
||2026.05.09
||2026.05.09
지난 30일 경남 창원 진해항에서 열린 ‘양만춘함 통합기관제어체계(ECS) 성능개선 완료 기념식’은 우리 해군 역사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남겼다. 한화시스템이 국내 최초로 독자 개발한 통합기관제제어체계, 즉 ECS가 3200톤급 헬기탑재 구축함 양만춘함(DDH-I)에 처음으로 실제 탑재돼 운용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동안 양만춘함은 해외 업체 장비에 의존해 왔지만, 이번 성능개선 사업을 통해 함정의 핵심 제어 시스템을 국산 ECS로 교체하면서 우리 해군의 ‘심장’ 자립도가 한 단계 올라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통합기관제어체계(ECS)는 함정의 추진, 전력, 보조기기, 손상제어 등 선박 운용에 필요한 거의 모든 시스템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통합 관리하는 장비다. 함정이 어디로, 얼마나 빠르게 움직일지, 어떤 장비에 얼마만큼의 전력을 보낼지, 피격으로 일부 구역이 손상됐을 때 어떻게 차단·복구할지까지 모두 ECS를 통해 제어된다. 사람의 심장이 온몸에 피와 산소를 공급하듯, ECS는 함정 곳곳에 명령과 에너지를 보내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함정의 심장’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이미 한화시스템이 보유한 전투체계(CMS)가 함정의 ‘두뇌’에 해당한다면, 이번 국산 ECS는 그 두뇌와 짝을 이루는 심장에 해당하는 셈이다.
그동안 ECS와 같은 통합기관제어체계(IPMS)는 미국 L3해리스, 영국 롤스로이스, 이탈리아 핀칸티에리 넥스테크 등 소수 해외 방산기업이 사실상 독점해 온 분야였다. 이들 회사는 영국·캐나다·호주 해군 등 각국의 신형 호위함·프리깃에 IPMS를 공급하며, 추진·전력·보조기기·손상제어를 통합 관리하는 솔루션을 장악해 왔다. 우리 해군 역시 그동안 다수의 구축함과 호위함에서 외산 ECS·IPMS를 사용해야 했고, 핵심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해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전략·운용 측면 제약이 컸다.
외국산 ECS에 의존할 때는 부품 하나가 고장나도 해외 업체에 주문해 정비 일정을 맞춰야 했고,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역시 공급사 정책과 일정에 크게 구속됐다. 이 과정에서 군수지원 지연으로 함정이 항만에 묶여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작전 가동률과 지속 능력이 떨어지는 구조였다. 양만춘함 ECS를 국산 체계로 교체하면서 한화시스템과 국내 정비 인프라를 통해 신속한 유지보수와 성능개량이 가능해졌고, 정밀 감시·제어 성능과 전력 운용 효율도 기존 외산 장비 대비 향상된 것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함내 교육·훈련 기능까지 탑재해, 해상에서 가상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며 승조원 숙련도를 끌어올리는 것도 가능해졌다.
한화시스템의 ECS 국산화 여정은 2014년 시작됐다. 회사는 국방신속획득기술연구원·국방기술진흥연구소·한국기계연구원 등과 협력해 함정 공통 소프트웨어와 핵심 제어 알고리즘을 개발했고, 2022년에는 다양한 추진체계에 적용 가능한 공통 ECS 기술과 함정 탑재 적합성을 검증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양만춘함 사업은 이 기술을 실제 해군 함정에 적용해 성능을 입증한 첫 사례로, 민·관·군이 장기간 한 방향으로 힘을 모을 때만 도달할 수 있는 ‘고난도 국산화’의 전형으로 평가된다. 동시에 한화시스템은 방위사업청이 추진하는 차기 호위함 ‘울산급 배치-IV’ 1번함 ECS 체계개발 사업도 수주해, 차세대 함정으로까지 국산 ECS 라인업을 확장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함정 전투체계(CMS)와 통합기관제어체계(ECS)를 모두 독자 개발해 운용·실적을 갖춘 기업은 한화시스템이 유일하다. 이는 앞으로 건조될 K-함정들이 전투·기관·전력 제어를 모두 국산 기술로 통합 구성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화시스템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항공기 조종석 개념을 적용한 ‘콕핏형 통합함교체계(IBS)’ 기술까지 확보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IBS는 함교·전투정보실·기관통제실로 분산돼 있던 기능을 전투기 조종석처럼 한 공간에서 통합 제어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으로, 앞으로 적용될 경우 승조 인원을 줄이고 운용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는 차세대 솔루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인구 감소로 병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우리 군 입장에선 단순한 편의성을 넘어, 필수적인 전력 구조 개편 수단으로까지 의미가 확장되는 기술이다.
ECS 국산화의 또 다른 의미는 미래 해양 무인체계 시장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함정이 완전 무인화·고도 자동화되기 위해서는 추진·전력·손상제어·센서·무장을 모두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통합 제어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핵심이 바로 ECS와 CMS다. 두 시스템을 모두 국산 기술로 확보한 한화시스템은 정찰용·군집형 무인수상정, 무인잠수정 등 다양한 해양 무인체계 사업을 병행하며 글로벌 시장 진입을 노리고 있다. 유문기 한화시스템 해양사업부장은 “해군과 국방신속획득기술연구원 등의 적극적인 협력 덕분에 ECS를 독자 개발할 수 있었다”며 “함정 무인화·첨단화를 이끄는 기술 개발을 통해 글로벌 해양 방산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30년 가까이 외산에 의존해 온 ‘함정의 심장’ 분야에서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운 만큼, 양만춘함에서 시작된 이 작은 변화를 얼마나 빠르게 차세대 K-함정 전반으로 확산시킬지가 앞으로의 관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