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 심사위원장 박찬욱 "한국은 더 이상 영화의 변방 아니다"
||2026.05.13
||2026.05.13
“한국은 더 이상 영화의 변방 국가가 아니다.”
13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막을 올린 제79회 칸 국제영화제의 공식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박찬욱 감독이 심사위원단을 이끄는 첫 순간 한국영화의 성장에 관해 내놓은 말이다. 박 감독은 “영화의 중심이 확장돼 더 다양한 영화를 포용할 수 있게 된 결과”라고 덧붙이며 이번 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으로 나서는 소감과 각오를 밝혔다.
박찬욱 감독은 이번 영화제 개막에 앞서 12일 오후 칸 국제영화제 메인 행사장인 팔레 데 페스티벌의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그는 할리우드 배우 데미 무어, 2021년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수상작 ‘노매드랜드’의 클로이 자오 감독,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 ‘센티멘탈 밸류’의 스웨덴 배우 스텔란 스카스가드, 켄 로치 감독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과 ’나, 다니엘 블레이크‘ 등 시나리오를 쓴 폴 래버티 작가 등 심사위원단과 함께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올드보이‘로 2004년 처음 칸을 찾은 추억을 떠올렸다.
“그때만 해도 정말 가끔씩 한국영화가 소개되는 형편이었다”면서 “불과 20년 밖에 흐르지 않았는데 그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한국은 더 이상 영화의 변방 국가가 아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두고 그냥 한국영화가 잘 해서 중심에 진입했다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는 그는 “영화의 중심 자체가 확장돼 이제 더 많은 나라의 더 다양한 영화를 포용할 수 있게 된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심사위원장을 맡게 되기도 했다”는 그는 “올해 좋은 영화, 기대되는 영화가 세 편이나 초대받아 다행이다”며 웃었다.
올해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는 나홍진 감독의 '호프'가 초청받아 선보일 예정이다. 또 연상호 감독의 ’군체‘가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서, 정주리 감독의 ’도라‘가 감독주간에서 각각 관객을 만난다.
박 감독은 경쟁부문 심사위원단을 이끌며 ’호프‘를 비롯해 페드로 알모도바로 감독의 ‘비터 크리스마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상자 속의 양’,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의 ‘피오르드’ 등 22편을 대상으로 심사해 최고상인 황금종려상 수상작 등을 결정하게 된다.
박 감독은 한국영화의 성장을 언급하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한국영화에 더 점수를 주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날 기자회견서 박 감독은 칸 국제영화제 측으로부터 심사위원장직을 맡게 된 설렘도 드러냈다.
그는 “처음에 (심사위원장 위촉)소식을 들었을 때 아내가 가지 말자고 했다. 2017년 심사위원을 해본 적 있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일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며 웃었다. 이어 “(수락 여부를)5분 동안 고민했다”면서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면 칸에서 여러 번 경쟁부문 상영도 하고, 상도 여러 번 받으며 많은 선물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봉사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박 감독은 2017년 심사위원으로 활동할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등 다른 동료들과 너무 좋은 추억 쌓았다”면서 티에리 프레모 칸 국제집행위원장의 이름을 언급해 “티에리가 얼마나 좋은 사람들을 데려올지 잘 알고 있고 믿었다. 이번에도 훌륭한 동료 심사위원들을 만나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겠구나 생각해 수락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함께 심사에 나설 배우와 감독 등 심사위원들을 가리키며 “기다림 끝에 지금 이런 뛰어난 아티스트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내 믿음이 응답받았다 생각한다”면서 “이 뛰어난 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심사위원장이지만 우선 “순수한 관객의 눈으로 영화를 볼 작정을 하고 왔다. 아무런 편견도, 선입견도, 고정관념도 없이 설레는 마음만 갖고 나를 놀라게 만들 영화가 무엇인지 기다리는 마음으로 보려 한다”며 경쟁부문 초청 상영작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관람이 끝나고 심사 회의를 할 때에는 더 이상 그런 자세가 아니라 전문가로서, 영화에 대해 뚜렷한 견해를 갖고 있고 역사를 알고 있는 전문가로서 평가하려고 한다”고 다짐했다.
박 감독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예술과 정치의 관계 등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도 뚜렷하고 당당한 생각을 밝혔다.
그는 “정치와 예술을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와 예술을 대립되는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고 입을 열었다. 박 감독은 “정치적 주장을 담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예술의 적이라고 인식돼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정치적으로 경청할 만한 주장을 담고 있지 않다고 해서 그런 영화를 배제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생각을 드러냈다.
이어 “아무리 우리가 훌륭한 정치적 주장을 말하고 싶어도 그것이 예술적으로 탁월하게 성취되지 않는다면 그건 그냥 프로파간다(선동)에 불과할 것이다”면서 “결국 예술과 정치는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그것이 예술적으로 잘 주장된다면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올해 칸 국제영화제는 오는 24일 오전 시상식을 겸한 폐막식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경쟁부문 초청작인 ‘호프’는 16일 새벽 공식 상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