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벼랑 끝에서 피워낸 불꽃… 배우 겸 감독 이범규, 세계 무대로 뻗다
||2026.05.26
||2026.05.26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상이 멈추고 소속사와의 계약마저 해지됐을 때, 15년 차 배우는 주저앉는 대신 직접 카메라를 들었다. 연출도 시나리오도 정식으로 배운 적 없던 그가 카페에 앉아 3시간 만에 써 내려간 단편 영화 '상속'이 시작이었다. 이후 2년 만에 5편의 작품을 완성했고, 단편 '이 배우의 장례식'은 9개 국제영화제 초청에 이어 스페인 FICC24에서 관객상(People's Choice)을 거머쥐었다. 배우에서 3년 차 감독으로 본격적으로 거듭난 이범규 비케이필름 대표(39)를 그의 새 숏폼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만났다.
"이대로 사라질 수는 없었다. 세상에 이범규라는 배우가 여기 살아있음을 내 손으로 직접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2011년 KBS1 '광개토태왕'으로 데뷔한 그는 '내 마음의 꽃비', MBC '연인', 영화 '1987', '아이 캔 스피크' 등 수많은 현장을 거쳤다. 화려한 주연보다 외롭고 치열했던 조연의 시간이 지금의 그를 만든 자양분이다.
카메라 앞의 호흡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의 디렉팅은 남다르다. 이 감독은 "배우에게 '이렇게 해라'라고 지시하거나 내 행동을 따라 하라고 한 적이 없다. 그것은 배우를 가두는 일"이라며 "조금 추상적이더라도 캐릭터의 숨결과 상황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깊이 몰입할 수 있게 함께 공감하는 것이 내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창작자로서의 색깔을 묻는 질문에는 "블랙코미디, 드라마, 스릴러 등 장르를 가리지 않지만, 그 안에는 항상 예기치 못하게 툭 터지는 인간적인 허점과 묘한 리듬감이 있다"고 답했다.
그의 거침없는 행보는 5월 안방극장과 글로벌 시장을 동시에 겨냥하고 있다. 지난 15일 첫선을 보인 ENA 숏드라마 감독 서바이벌 '디렉터스 아레나'에 출사표를 던지며 시청자들과 새롭게 마주했다. 그는 "화려한 출사표라기보다, 대한민국에 이런 색을 가진 감독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글로벌 숏폼 시장에서의 행보도 이어진다. 12일 비글루 단독 공개작 '뽀삐가 재벌남으로 돌아왔다'에 이어, 21일에는 자비를 털어 3회차 만에 완성한 '러브러브 체인지 : 사랑은 루나, 고백은 한별, 흔들린 건 우주'(총 50회)가 글로벌 동시 공개됐다. 김소은, 백지훈, 박형섭, 나해령 등이 출연한 이 작품은 아이치이(iQIYI), 레진스낵, 숏챠, 드라마박스 등 글로벌 멀티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 시청자와 만나고 있다. 낯선 거지에게 받은 사탕 하나로 영혼이 뒤바뀐 두 친구가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독특한 로맨스물이다.
이 감독은 "익숙하고 진부해 보이는 껍데기를 벗겨내면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다. '행복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이미 내 곁에 있는 걸 깨닫는 것'이라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말미, 그는 태어난 지 100일이 조금 지난 딸의 사진을 꺼내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저는 뭐든 결국 해내는 사람입니다. 다음을 기대해 주세요." 벼랑 끝에서 피워낸 그의 집념은 이제 막 더 큰 세계로 번지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