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쫓겨났는데도 한국 무덤에 묻힌 미국인 가족 정체
||2026.05.29
||2026.05.29
과거 한국인들에게 결핵은 단순한 질병이 아닌 ‘악귀의 저주’로 통했다. 5명 중 1명이 앓을 정도로 흔했지만, 무지와 편견 탓에 환자들은 소외당했다.
이 비극적인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온몸을 던진 이는 셔우드 홀(Sherwood Hall) 선교사였다.
그의 헌신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숭고한 유산이었다.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 홀은 평양에서 환자를 돌보다 순직했고, 어머니 로제타 홀은 한국 최초의 여의사를 양성하며 의료와 특수교육의 기초를 닦았다.
한국에서 태어나 이들의 활동을 보고 자란 셔우드 홀에게 한국은 첫 번째 모국이었다. 캐나다에서 의학 공부를 마친 그는 1926년 아내 메리안과 함께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1928년 황해도 해주에 한국 최초의 근대식 결핵 요양원을 세워 환자들을 살려냈고, 1932년에는 치료 기금 마련을 위한 ‘크리스마스 씰’을 최초로 발행했다.
당시 셔우드 홀은 임진왜란 때 왜군을 물리친 ‘거북선’을 첫 씰 도안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일제의 반대로 발행 허가가 나지 않자 소재를 ‘남대문’으로 바꿔 발행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이후 1940년 추방 전까지 9년간, 홀 가족은 매년 12월이면 씰 배포를 위해 분주한 겨울을 보냈다. 오늘날 90년 넘게 이어진 한국 결핵 퇴치 운동의 상징은 이들의 고단한 헌신 속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시련은 일제의 감시와 함께 찾아왔다. 태평양 전쟁을 앞둔 일제는 1940년, 셔우드 홀에게 스파이 누명을 씌워 일본 헌병대를 통해 강제로 추방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인술을 펼치며 의료 체계를 발전시킨 공로자가 역설적이게도 그 헌신 때문에 모국에서 쫓겨난 것이다.
인도 파견 중에도 결핵 퇴치에 힘쓰며 남몰래 한국을 도운 그는 “죽어서 한국 땅에 잠들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1991년 98세의 일기로 타계한 그의 시신은 서울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역에 안치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홀 가문 일가족 6명이 나란히 누워 있다. 2대에 걸쳐 한국인의 생명을 위해 삶을 바친 이들의 역사는 한국 근대 의료사에 깊은 울림을 남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