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으로 이름까지 바꾼 동생과 완전 절연한 대기업 회장님
||2026.06.01
||2026.06.01
대한민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유일한 박사에게는 평생 가슴에 묻어야 했던 아픈 손가락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친동생인 유명한이 일제의 강요에 굴복하며 친일 행보를 걷게 된 사실이다. 형은 독립운동에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동생은 현실의 벽 앞에서 너무나도 다른 길을 선택했다.
당시 동생 유명한은 형이 세운 유한양행의 제2대 사장 자리를 맡아 기업을 이끌고 있었다. 일제는 전쟁 지원금을 내놓으라며 기업을 강하게 압박했고 동생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 기업의 존속을 위해 선택한 현실적인 딜레마는 결국 민족의 정신을 저버리는 친일 행위로 이어지고 말았다.
동생이 일제의 요구에 따라 창씨개명을 단행하고 노골적인 친일 행보를 보이자 유일한 박사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져버린 혈육을 용서하지 않았으며 동생과의 모든 관계를 즉시 완전히 끊어버리기로 결심했다. 같은 피가 흐르는 형제였지만 국가를 배신한 동생은 더 이상 그에게 가족이 아닌 그저 매국노일 뿐이었다.
유일한 박사는 관계를 단절하며 나는 동생 유명한을 둔 적은 있어도 일본놈 야나기아라 히로시라는 놈은 전혀 모른다고 선언했다. 이 짧고 강렬한 선언은 단순한 개인적 분노를 넘어 자신의 신념을 져버린 혈육에 대한 엄중한 심판의 메시지였다. 그는 동생이라는 개인의 존재보다 민족의 정의와 독립이라는 대의를 훨씬 더 소중하고 가치 있게 여겼다.
형제가 서로에게 등을 돌려야만 했던 그 시대의 비극은 유일한 박사 개인에게도 평생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로 남았다. 하지만 그는 개인적인 슬픔에 매몰되지 않고 끝까지 기업가로서의 양심과 독립운동가로서의 지조를 굳건히 지켜냈다. 유일한 박사의 이러한 서늘하고도 단호한 결단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한 애국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당시 유한양행은 일제의 수탈과 압박 속에서도 민족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유일한 박사는 기업이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확고한 철학을 가졌다. 그래서 동생의 변절은 그에게 단순한 가족 문제를 넘어 기업의 근간을 흔드는 용납할 수 없는 치욕이자 배신이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유일한 박사를 존경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가 막대한 부를 쌓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부를 다루는 태도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몸소 실천한 선구자적인 인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혈육까지 끊어내며 지키려 했던 그의 청렴한 정신은 유한양행이라는 기업이 지금까지 사랑받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