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이 친아들처럼 아꼈다는 기업가의 정체

인포루프|문가람 에디터|2026.06.02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엄격하고 차가운 지도자로 정평이 나 있었으나, 사석에서 이름을 직접 부르며 친아들처럼 아꼈던 단 한 명의 기업가가 있었다.

현대의 정주영, 삼성의 이병철 회장조차 받지 못했던 파격적인 총애의 주인공은 바로 대우그룹 창업주 김우중 회장이다.

출처: 유튜브 ‘대우재단 Daewoo Foundation’

박 대통령과 김 회장의 인연은 단순한 정경유착을 넘어선 깊은 신뢰와 집안 내력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박 대통령이 대구사범학교 시절 가장 존경했던 스승인 김용하 선생이 바로 김 회장의 부친이었던 것이다.

박 대통령에게 김 회장은 단순히 성공한 기업가가 아니라, 평생 마음의 빚을 지고 있던 스승의 아들이자 가족 같은 존재였다.

출처: 딸 김선정이 언론에 제공했던 가족 사진

이러한 개인적 친분은 국가 사업을 향한 전폭적인 신뢰로 이어졌다. 박 대통령은 ‘수출 제일주의’ 정책을 현장에서 가장 완벽하게 수행하는 김 회장을 전적으로 신임했다.

특히 국가의 운명이 걸린 중화학공업 육성이라는 막중한 과제가 주어질 때마다 박 대통령이 가장 먼저 찾았던 인물도 김 회장이었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과 수출훈장 받는 김우중 회장 – 출처: 세계경영연구회

대통령은 부실 기업이 생길 때마다 김 회장에게 인수를 맡기며 정상화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김 회장은 이에 부응하며 500만 원으로 시작한 사업을 불과 30년 만에 재계 서열 2위, 자산 20조 원 규모의 대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기적을 일궈냈다.

그러나 이 화려한 ‘대우 신화’ 뒤에는 한국 현대사의 고질적인 병폐와 경영 실책이라는 짙은 그림자가 공존한다.

1998년, 도널드 트럼프와 김우중 대우 회장 부부 – 출처: 유튜브 ‘대우재단 Daewoo Foundation’

정권의 전폭적인 지원은 정경유착이라는 비판으로 이어졌으며,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당시 뇌물 공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는 등 정치권과의 밀월은 대우의 아킬레스건이 되었다.

결정적으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부채 중심의 무리한 경영 방식이 한계를 드러내며 그룹은 해체되었다.

출처: KBS 뉴스

이 과정에서 41조 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분식회계와 9조 원대 사기 대출 사실이 드러나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한국 경제 성장의 주역이자 ‘수출 전사’로 칭송받던 그는, 불투명한 회계와 무책임한 경영으로 막대한 공적 자금 투입을 초래했다는 상반된 평가를 동시에 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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