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한대뿐인 故 이건희 회장의 희귀 자동차 정체
||2026.06.08
||2026.06.08
생전 독보적인 자동차 마니아로 잘 알려졌던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의 ‘원오프(One-off·전 세계 단 한 대뿐인 맞춤 제작 차량)’ 수집품이 글로벌 경매 시장에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전 세계에 오직 한 대뿐인 이 희귀 차량의 정체는 1989년식 ‘루프(RUF) 928R’이다.
외관은 영락없는 포르쉐의 클래식 GT(그랜드 투어러) 모델인 928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 차의 진짜 정체는 포르쉐가 아니다.
이 선대회장은 부가티,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 당대 최고의 슈퍼카들을 수집하며 자동차 기술에 깊은 관심을 보인 세계적인 컬렉터였다.
그의 까다로운 안목을 충족시키기 위해 움직인 곳은 독일의 정식 완성차 제조사이자 포르쉐 전문 빌더인 ‘루프(RUF Automobile GmbH)’였다.
일반적인 튜닝숍이 이미 완성된 자동차의 부품을 교체하는 수준에 그친다면, 루프는 차원이 다른 공정을 거친다. 루프는 독일 연방자동차청(KBA)으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은 독립된 ‘완성차 제조사’다.
이 선대회장의 928R 역시 포르쉐 공장에서 완성된 차를 가져와 개조한 것이 아니다. 루프가 포르쉐로부터 도색조차 되지 않은 날것 상태의 뼈대(Body-in-white)만 공급받아 처음부터 끝까지 자체 기술력으로 조립해 올린 독립적인 차량이다.
실제로 자동차의 주민등록증이라 할 수 있는 차대번호(VIN)를 보면 일반 포르쉐 차량은 ‘WP0’로 시작하지만, 이 차량은 루프 고유의 완성차 코드인 ‘W09’로 시작한다.
루프가 역사상 단 한 번 시도한 928 기반의 완성차이자, 오직 이건희 회장만을 위해 바닥부터 새로 지어 올린 전 세계 유일의 모델인 셈이다.
차량의 사양 역시 이 선대회장의 취향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외관은 묵직한 블랙 컬러로 마감되었으며, 내부는 최고급 와인레드 가죽시트와 알칸타라 소재의 스티어링 휠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성능 또한 압도적이다. 루프의 엔지니어들이 손을 본 5.0리터 DOHC V8 엔진은 최고 출력 360마력, 최대 토크 354lb-ft의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네 바퀴 모두에 고성능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 시스템을 탑재했으며, 계기판의 속도계는 시속 180마일(약 290km/h)까지 새겨져 있다.
여기에 자동 온도 조절 장치, 전동 선루프, 뒷좌석 전용 에어컨 시스템까지 갖췄다. 단순히 서킷을 달리기 위한 장난감이 아니라, 최고 수준의 편의성과 강력한 달리기 성능을 겸비한 최상급 GT카를 원했던 이 선대회장의 주문 사항이 반영된 결과다.
엔진룸 내부에는 그의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진 전용 명판이 부착되어 특별함을 더했다.
1989년 9월 이 선대회장의 컬렉션에 인도된 이 차량은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삼성 컬렉션에서 철저하게 관리됐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경매 출품 당시 계기판에 기록된 누적 주행거리는 단 1,568마일(약 2,523km)에 불과했다. 사실상 신차에 준하는 완벽한 보존 상태였다.
이 선대회장 사후 차량을 다시 매입한 루프 사가 2021년 독일 파펜하우젠 본사 팩토리에서 최신 브레이크 패키지와 19인치 전용 휠을 적용하는 등 정밀 복원(Restore) 작업을 마친 후, 미국 경매 전문 업체 구딩앤컴퍼니(Gooding & Company)의 아멜리아 아일랜드 경매에 최종 출품됐다.
전 세계 자동차 수집가들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당초 경매사 측이 제시한 예상 낙찰가는 40만 달러에서 50만 달러(약 5억 8,600만 원 ~ 7억 3,250만 원) 선이었다.
경매 현장 라이브 입찰 당시에는 수집가들 간의 치열한 눈치싸움 끝에 출품자의 최저 기대 가격에 미치지 못해 일시 유찰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최종 낙찰가는 전문가들의 예상치 하한선을 살짝 밑도는 335,000달러(한화 약 4억 9,070만 원)로 기록되며 최종 판매가 완료됐다.
비록 예상가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한국 재계의 거물이 남긴 독보적인 자동차 헤리티지와 독일 장인 정신이 결합된 ‘세상에 단 하나뿐인 포르쉐’는 수집가들의 깊은 인상을 남긴 채 새로운 주인의 품으로 돌아가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