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때려서 전성기에 퇴출당해 30년째 떠돌이 생활중인 前 연예인
||2026.07.01
||2026.07.01
1960년대 데뷔와 동시에 30만 장이라는 유례없는 앨범 판매량을 기록하며 ‘국민 가수’ 반열에 올랐던 가수 박일남이 과거의 과오를 속죄하며 홀로 떠돌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근황이 확인됐다.
한때 빌딩 수십 채를 가질 수 있을 만큼 막대한 부와 명예를 누렸던 톱스타가 왜 가족을 등지고 길 위의 방랑자가 되었는지,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박일남의 탄탄대로였던 가수 인생에 제동이 걸린 것은 불같은 성격에서 비롯된 폭행 사건이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1974년 발생한 후배 배우 폭행 사건이다.
당시 대중문화계는 영화배우와 가수의 사회적 위치가 확연히 나뉘어 있었고, 가수를 상대적으로 낮게 보던 분위기가 팽배했다. 박일남은 선배들에게 무례하게 행동하는 한 후배 배우를 야단치던 중, “무슨 가수 나부랭이가 질책하느냐”는 취지의 말을 듣자 분을 참지 못하고 뺨을 때렸다. 이 사건으로 박일남은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힌 혐의로 구속되었으며, 한국연예인협회로부터 제명 처분을 받는 등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학창 시절부터 권투와 레슬링을 배웠던 이력과 거친 성격이 맞물리면서, 대중과 언론은 그를 ‘건달 가수’, ‘깡패 두목’으로 치부하기 시작했고 무대에서의 입지는 점차 좁아졌다.
폭행 시비 이후에도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박일남은 1980년대 들어 무주택 연예인들을 위한 아파트 건립 사업을 추진했으나, 결국 부도를 맞이했다.
이로 인해 사기 혐의에 휘말리게 된 그는 사법당국의 눈을 피해 약 6년 동안 숨어 지내는 도피 생활을 겪어야 했다. 이후 해당 사건은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으며 억울함을 벗었으나, 박일남 스스로 심경의 큰 변화를 겪었다. “사기꾼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어떻게 노래를 부르겠느냐”며 수백 벌의 무대 의상과 구두를 모두 처분하고 자발적으로 가요계를 떠났다.
현재 박일남은 아내와 세 딸, 아들 하나를 두고도 가족과 떨어져 홀로 전국의 거리를 떠돌거나 개인 사무실에서 기거하는 방랑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젊은 시절 거듭된 구속과 수감, 수배 생활로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겼다는 부채감 때문이다.
특히 그는 과거 자신을 둘러싸고 끊이지 않았던 여성들과의 루머가 사실 여부를 떠나 아내에게 치명적인 수치심과 외로움을 주었다고 털어놓았다. 또한 방탕한 씀씀이로 가정을 돌보지 못했음에도 묵묵히 자식들을 키워낸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방랑을 택한 가장 큰 이유라고 밝혔다.
박일남은 자신이 지은 죄를 스스로 벌하고 속죄한다는 마음으로,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거친 길 위의 삶을 자처하며 지나온 날들을 반성하고 있다.
